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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Grace Korean Church Corona</title>
		<link>https://gkccorona.com</link>
		<description>Grace Korean Church Corona</description>
		
				<item>
			<title><![CDATA[2026/4/15 구원받은 자의 반응 (시 98:1-9)]]></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53]]></link>
			<description><![CDATA[<strong>시편 98:1-9</strong>은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찬양합니다.

시인은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선포합니다(1 상반절).
여기서 <strong>‘새 노래’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성도의 반응을 뜻합니다.</strong>
시인은 ‘구원 역사’를 ‘기이한 일’이라 표현합니다.
‘기이한 일’들 중심에는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구원을 베푸셨음을 고백합니다(1 하반절).
‘기이한 일’은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구원 역사를 통해 당신의 공의를 뭇 나라가 보는 앞에서 분명하게 나타내셨습니다(2절).
이처럼 <strong>하나님의 구원은 역사 속에서 공개적으로 드러난 사건입니다.</strong>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시작되었지만 이제 땅 끝에 있는 모든 사람까지도 구원을 목격하게 되었음을 선언합니다(3절).
“<em>그가 이스라엘의 집에 베푸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em><em>땅</em><em> </em><em>끝까지 이르는 모든 것이 우리 하나님의 </em><em>구원</em><em>을 보았도다</em>”
<strong>“</strong><strong>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였다는 것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오늘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의 불신앙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지속되고 있음을 강조한 것입니다.</strong>

시인은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명령합니다(4 상반절).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 이 세상의 유일한 주권자이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을 향한 우주적 차원의 구원이기에 온 땅이 소리내어 즐겁게 노래하며 모든 악기를 가지고 찬양하라고 명령한 것입니다(5-6절).
<strong>하나님의 구원을 실제로 경험한 자들의 올바른 반응은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주권과 통치를 기뻐하는 찬양입니다.</strong>

시인은 하나님에 대한 찬양의 범위가 인간 공동체에서 자연 세계 전체로 확장합니다(7-8절).
‘새 노래’는 인간을 넘어 바다와 세계, 강과 산 들의 합창으로 이어지는 이유를 시인은 말합니다(9절).
“<em>그가 </em><em>땅</em><em>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em>”이기 때문입니다
<strong>우리는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구원의 감격을 찬양하며, 복음을 전하는 복된 성도로 승리해야 합니다.</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Wed, 15 Apr 2026 07:35:0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4/14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라 (시 97:1-12)]]></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52]]></link>
			<description><![CDATA[<strong>시편 97:1-12</strong>은 하나님의 통치를 기뻐하라고 초청합니다.

<strong>시인은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나니”라 선언합니다(1절).
</strong>하나님의 통치는 온 세상에 미치며, 다스리심의 기초는 “의와 공평”이라 말합니다(2절).
이는 하나님의 통치는 정의와 질서 위에 서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시인은 하나님 앞에서 불이 나와서 사방의 대적들을 불사르신다고 선언합니다(3절).
이는 당신의 백성을 대적들의 손에서 구하시고 대적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또한 시인은 “하나님의 번개가 세계를 비추면 땅이 보고서 두려워 떤다”고 말합니다(4절)
여기서 ‘번개’는 심판의 도구로,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이 앞에서 모든 피조물들은 굴복하며 세상의 질서를 공평과 정의로 바로 잡으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모든 백성이 보게 됩니다(5-6절).
하나님의 임재 앞에 가장 견고한 피조물인 산이 밀랍처럼 녹아내린다고 시인이 말합니다(5절)
<strong>이와 같이 우리 앞을 가로막는 문제와 두려움이 아무리 거대한 산 같아도 하나님 앞에서 아무 힘도 쓸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strong>

그러므로 ‘조각한 신상’을 섬기며, ‘허무한 것’을 자랑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7절).
오직 주만이 온 땅 위에 지존하시고 모든 신들보다 위에 계십니다(9절).
가짜 신들이 주는 기쁨은 순간입니다.
결국 우리를 더 공허하게 만들고 부끄럽게 할 뿐입니다.
<strong>그러나 모든 신들보다 위에 계시며,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우리 삶의 왕으로 모실 때, 우리 영혼은 영원한 안식과 참된 만족을 얻게 될 것입니다.</strong>

시인은 하나님을 주로 섬기며 사랑하는 자들을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10-12절).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기쁨을 준비해 두십니다(11절).
<strong>하나님의 우선순위가 나의 우선순위가 될 때 우리 안에 참된 기쁨이 살아나는 것을 기억하세요.</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ue, 14 Apr 2026 07:26:3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4/13 주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라 (시 96:1-13)]]></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51]]></link>
			<description><![CDATA[<strong>시편 96:1-13</strong>은 창조주 하나님의 온 우주적 통치를 찬양합니다.

시인은 ‘새 노래’로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선포합니다(1절).
<strong>‘</strong><strong>새 노래’는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으로 ‘새로운 피조물’된 자의 응답입니다.
</strong>“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새로운 피조물”이라 고백하였듯이(고후 5:17) 새로운 피조물된 자들이 날마다 새롭게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기억하는 감사의 노래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자들을 초청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송축하라고 명령합니다.
<strong>‘</strong><strong>하나님의 이름’은 언제나 당신의 백성과 함께하시고 그들의 고통을 들으시며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존재 방식입니다.</strong>

그럼 하나님이 찬양 받으셔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시인은 그 이유가 “<strong><em>여호와는 위대</em></strong>”하시기 때문이라 고백합니다(4절).
‘위대하다’는 단어는 하나님의 불가해성과 절대적 통치를 드러내며, 하나님의 백성을 둘러싼 다른 신들과는 비교될 수 없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온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고 선포합니다(7-10절).
“<em>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em>” 라 명령합니다(8절).
‘영광’을 뜻하는 단어는 본래 ‘무겁다’란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존재와 이름은 온 우주를 떠받칠 만큼 묵직하고 위대함을 표현합니다.
반면 다른 신들은 ‘우상’, 즉 ‘헛 것’이라 말합니다(5절).
우리가 평생 피난처로 삼고 붙잡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strong>이처럼 온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즐거이 외쳐야 할 이유를 시인은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심판의 주로 이 땅에 임하시기 때문이라 고백합니다(11-13절).
</strong>하나님의 통치로 이 땅의 질서가 회복되고 생명이 유지될 것입니다.
하늘과 땅, 바다와 밭, 숲의 모든 나무까지도 주님 앞에서 즐거이 노래한다고 말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심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만물들이 이토록 기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님은 우리의 눈에 눈물을 닦아 주시고 한숨이 변하여 소망의 노래로 바꾸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Mon, 13 Apr 2026 07:34:5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4/11 환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자 (시 94:1-23)]]></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50]]></link>
			<description><![CDATA[<strong>시편 94:1-23</strong>은 하나님의 정의를 회복해 달라고 부르짖는 탄원시입니다.

<strong>시인은 ‘복수하시는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탄원을 시작합니다(1절).
</strong>이는 하나님의 정의와 주권을 요청하는 믿음의 외침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의를 밝히 드러내시고 정의를 회복해 달라는 표현으로 하나님의 ‘빛’을 비추어 달라는 신앙 고백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개입으로 악인의 행위에 대해 정당한 판결을 내려 달라는 것입니다.

<strong>시인은 악인이 ‘언제까지’ 라는 질문을 반복함으로  하나님의 개입이 지연되는 듯한 상황에서 깊은 탄식과 신앙적 갈등을 드러냅니다(3-7절).</strong>
악인들은 오만에서 비롯된 거만한 언어와 행동으로 주의 백성에게 고통을 안겨주며, 사회적 약자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음을 폭로합니다(5-6절).
악인들은 주께서 ‘보지 못하고, 알아차리지 못한다’ 말하며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부정하고 있음을 고발합니다(7절).

<strong>이제 시인은 악인에 대해 지혜로 훈계합니다(8-11절).
</strong>악인들을 ‘어리석은 자들’, ‘미련한 자들’ 이라 부르며(8절),
하나님을 알지 못함과 경외하지 못함으로 인한 무능력을 폭로합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악인들에게 귀와 눈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할 리 없다고 반문합니다(9절).
사람의 생각의 허무함을 다 아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징계하신다 선언합니다(10-11절).

<strong>반면 시인은 어떤 자가 하나님의 복을 받는지 말합니다.
하나님의 징계와 가르침으로 다듬어진 사람이 ‘복있는 자’입니다(12절).
</strong>하나님을 거처로 삼는 자가 받는 고난 자체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을 피난처가 되시며, 고난 가운데서도 평안을 주십니다(13절).
또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자기 소유로 삼으십니다(14절).
<strong>이런 하나님을 경험한 자는 인생의 고난으로 미끄러져 넘어질 것 같은 위태로운 순간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다’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18절).
</strong>마침내 시인은 하나님만이 “나의 요새, 내가 피할 반석’이라 고백합니다(22절).

<strong>모든 상황 속에서 마음 중심이 흔들리지 않고 나의 요새가 되어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소망의 주를 붙드세요.</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Sat, 11 Apr 2026 07:35:5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4/10 인생을 붙드는 진짜 힘 (시 93:1-5)]]></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49]]></link>
			<description><![CDATA[<strong>시편 93:1-5</strong>은 하나님의 통치가 견고함을 찬양합니다.

<strong>시인은 영원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고백합니다(1-2절).
“여호와께서 다스리신다”</strong>라는 표현은 태초부터 이미 확립되고 지금까지 지속되어 온 영원한 하나님의 통치를 선언한 것입니다.
온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스스로 귄위를 입으셨으며 능력의 옷을 입으셨고, 띠를 띠셨기 때문에 세계도 굳건히 서서, 흔들리지 않습니다(1절).
이는 하나님께서 태초 이전부터 왕좌에 계시며, 위엄과 능력으로 세계를 완전한 질서 속에 두시는 영원한 왕이심을 선언한 것입니다(2절).
<strong>이처럼 영원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하시기 때문에 이 세상과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흔들리지 않습니다.</strong>

<strong>시인은 혼돈을 통제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고백합니다(3-4절).
</strong>3절의 세 번 반복되는 ‘큰 물’의 외침은 시인이 체험한 압도적 위기와 두려움을 청각적으로 고조시키는 표현입니다.
‘큰 물’, 곧 ‘혼돈의 물’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흔들어 보려 하지만, 높이 계신 하나님의 능력은 이러한 것보다 크신 분이기에 시인은 두려움을 주는 환경 가운데서도 낙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물 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와 싸우시는 분이 아니라 그것들을 다스리시는 분입니다(4절).
<strong>이 하나님이 우리의 배후에 있음을 신뢰할 때, 우리는 영원한 통치자이신 하나님께 피하여 혼돈의 환경 가운데서도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strong>

<strong>이제 시인은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하심이 어디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분명히 보여 줍니다(5절).
</strong>“<em>여호와여 주의 증거들이 매우 확실하고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니 여호와는 영원무궁하시리이다</em>”

<strong>하나님의 통치는 말씀을 통해 인간의 역사 속에서 신실하게 확인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통치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성전의 예배를 통해 구체적으로 경험됩니다.
</strong>이것이 오늘 우리를 붙드는 진짜 힘인 것을 잊지 마세요.]]></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Fri, 10 Apr 2026 07:35:2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4/9 반석 위에 뿌리 내린 자로 살라 (시 92:1-15)]]></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48]]></link>
			<description><![CDATA[<strong>시편 92:1-15</strong>은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시편 92편의 표제에 ‘안식일의 찬송시’라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안식일에 제물과 함께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위한 시편일 것입니다.
<strong>‘</strong><strong>안식일’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으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통한 우주적 통치를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strong>시편 기자는 “<em>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em>”라 찬양합니다(1절).
여기서 ‘좋다’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을 보실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에 사용된 단어입니다.
그래서 ‘좋다’는 표현은 단순히 윤리적으로 선함이나 기능적으로 유용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자신의 자리를 찾고, 본연의 목적대로 존재하며, 서로 완벽한 조화와 질서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strong>오늘 우리의 헝클어진 삶의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안식과 평화를 경험하게 될 때, 온전히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할 수 있게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strong>

시인은 주께서 ‘행하신 일’과 주의 ‘손으로 행하신 일’을 찬양합니다(4-5절).
이는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실제로 개입하신 구원 행위를 말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 ‘무지한 자’는 영적 둔감으로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일하심을 분별하지 못합니다(6절).
악을 행하는 이들은 겉으로는 성공한 것 같아도 곧 영원히 멸망하게 될 것을 선언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지존자로서, 재판관으로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7-8절).

시인은 ‘악을 행하는 자’들을 ‘주의 원수들’로 지칭합니다(9절).
이는 이들이 하나님의 통치에 맞서는 세력인 까닭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개입으로 산산이 무너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러한 승리를 ‘보고 듣게’ 될 것입니다(10-11절).

마지막으로 시인은 성도의 삶을 하나님의 성소 뜰에 심겨진 생명력을 상징하는 ‘종려나무’와 ‘백향목’에 비유합니다.
하나님께 뿌리내린 인생은 세월을 거스리는 신비를 경험합니다(14절).
<strong>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전능하신 하나님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09 Apr 2026 08:02:2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4/8 가장 안전한 곳 (시 91:1-16)]]></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47]]></link>
			<description><![CDATA[<strong>시편 91:1-16</strong>은 성도가 하나님의 품 안에 거하는 자임을 이야기합니다.

시인은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1-2절).
하나님은 피난처, 요새, 그리고 자신이 의뢰하는 분이십니다.
‘의뢰하다’는 미래를 향한 지속적인 의존을 의미하며, 하나님만이 고난 속에서 붙들고 의지해야 할 분임을 강조합니다.
<strong>사람이 만든 성벽은 무너질지라도, 우리의 산성이 되시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안전할 수 있습니다.</strong>

또한 시인은 재난과 두려움에서 지켜 주시는 분임을 고백합니다(3-6절).
하나님의 백성을 위협하는 ‘새 사냥꾼의 올무’와 전염병에서 건지십니다.
여기서 ‘전염병’이란 ‘악한 말’ 또는 ‘치명적인 화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적대적 세력에게 노출된 상태를 묘사하는 것으로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하실 수 있는 상황을 말합니다.
사냥꾼의 덫에서 스스로 지킬 수 없는 어린 새에게는 어미 새의 강한 날개 아래만이 피난처가 됩니다(4절).
이와 같이 여호와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보호받음을 말합니다.
또한 죽음의 세력이 종일토록 공격해 와도 하나님의 신실함은 그것을 무력화시킴을 고백합니다(5-8절).
<strong>오늘 우리는 눈 앞에 보이는 상황과 처지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나를 지키시고 돌보시는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strong>

시인은 하나님을 거처로 삼는 자에게 승리를 주심을 고백합니다(9-13절).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지존자를 거처로 삼는 자에게 하나님의 보호에 대한 약속들이 실제 효력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보호 아래 안전을 누리며(10절), 항상 동행하시며 당신의 백성을 지키십니다.
또한 천사들을 시켜 당신의 백성을 손으로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심을 고백합니다(11-12절).
<strong>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단순한 언어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방향성과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을 정하는 행위입니다.</strong>

참된 신앙은 하나님을 내 욕심을 위해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나를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런 자에게 주시는 약속이 있습니다(14-16절).
우리를 건지시며, 높여 주시며, 하나님이 정해주신 날을 충만하게 누립니다.
주 안에 거하므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승리를 경험하세요.]]></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Wed, 08 Apr 2026 07:36:0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4/7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시 90:1-17)]]></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46]]></link>
			<description><![CDATA[<strong>시편 90:1-17</strong>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중보자의 기도입니다.

1-2절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 대해 보호자이셨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보호자로서 ‘거처’가 되심을 찬양합니다(1절).
‘거처’란 짐승의 은신처를 가리키는 말로 아무도 알 수 없는 은밀하고 안전한 곳을 가리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지어지기 전, 산과 땅이 생기기 전부터 계셨던 영원한 분이십니다(2절).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신 분 앞에 <strong>시인은 인간의 유한함과 불완전성을 고백합니다(3-6절).
</strong>“주께서 사람을 띠끌로 돌아가게 하시고”(3절)에서 <strong>‘</strong><strong>띠끌’이란 쪼개지거나 터졌다는 뜻입니다.
결국 하나님 없는 인간은 의미 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strong>인간에게 긴 세월조차도 하나님께는 순간일 뿐입니다(4절).
시인은 “<em>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em>”라 고백합니다(5-6절).
이는 인간의 삶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얼마나 쉽게 쓸려가고 사라지는지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짧은 생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strong>이제 시인은 인간의 삶이 더욱 짧아진 결정적 원인을 이야기합니다.
</strong>이는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하심 때문입니다(7-10절).
<strong>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서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며, 죄는 인간의 삶을 무너뜨립니다.
</strong>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지나가는 우리의 인생은 자랑거리조차도 결국 ‘수고와 슬픔’ 뿐 입니다(10절).

<strong>시인은 죽음을 피하거나 고난을 없애 달라 기도하지 않습니다.
대신 “<em>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해 하소서</em>”(12절) 라며 기도합니다.
</strong>이곳에서 말하는 ‘지혜’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능력입니다.
나의 유한함을 깨닫고 영원하신 하나님께 삶을 맡기는 것입니다.
인생의 허무함과 불안정성을 깨달은 중보자는 하나님께 매달립니다(13-17절).
<strong>오늘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 기도하며 내 인생을 온전히 맡기십시오,</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ue, 07 Apr 2026 20:50:1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4/6 흔들림 없이 지켜내야 할 자리 (마 28:11-20)]]></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45]]></link>
			<description><![CDATA[<strong>마태복음 28:11-20</strong>은 인간의 헛된 주장과 상관없이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시는 이야기입니다.

여자들은 기쁨으로 부활의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하러 가는데 무덤을 지키던 군인들은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것을 보고하기 위해 대제사장들을 찾아갔습니다(11절).
대제사장들은 장로들과 논의한 후 군인들에게 많은 돈을 주어 예수님의 부활을 왜곡하려고 합니다(12절).
예수님의 제자들이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이 자는 사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갔다고 말을 맞추자고 모의했습니다(13절).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돈과 계략으로 부활의 진리가 사람들의 귀에 들리기 전에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고 꾸며낸 허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strong>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기에 아무도 막을 수 없고 세계 모든 열방들에게 전파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strong>

예수님을 은 30에 판 가룟 유다를 제외한 열한 제자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갈릴리의 산에 갔습니다(16절).
갈릴리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백성을 부르신 곳입니다(마 4:23-25).
이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십니다(18-20절).
물론 일부 제자는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기도 합니다(17절).
<strong>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온전한 믿음이 없는 상태임에도 주님을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버리지 않고 큰 사명을 맡기십니다.</strong>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18절).
이제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이 땅에 남겨질 제자들에게 그 권세를 가지고 모든 민족을 제자로 세우라 명령하십니다.
제자를 세우기 위해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가지고 가르치라고 하십니다.
<strong>이 사명을 감당하는데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다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주님이 있으라 하는 자리에서 승리하세요.</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Mon, 06 Apr 2026 19:59:3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4/4 부르심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라 (마 27:57-66)]]></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44]]></link>
			<description><![CDATA[<strong>마태복음 27:57-66</strong>은 예수님의 시신과 무덤을 목격한 사람들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날이 저물었을 때에 예수님의 제자로, 아리마대 출신인 요셉이 빌라도를 찾아 왔습니다(57절).
그가 빌라도에게 찾아와 예수님의 시체를 요청했습니다(58절).
당시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덤을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 처형을 당하는 범죄자로 취급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시신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의 열 한 제자들이 이미 도망했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할 정도로 적극적인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요셉은 범죄자로 취급받은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더 이상 숨지 않았습니다.
그의 헌신으로 예수님의 시신은 세마포에 싸여 영광스럽게 잘 준비된 무덤에 안치될 수 있었습니다.
<strong>오늘 우리도 연약함 때문에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믿는 자의 도리를 보이지 못한 순간을 경험했을지 모릅니다.</strong>
<strong>그러나 이제 결정적인 순간에 용기를 내어 주님 편에 서는 믿음의 결단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strong>

예수님의 무덤을 목격한 믿음의 여인들도 있습니다(61절).
무덤이 있는 그곳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신이 안치된 무덤 맞은 편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 여인들은 예수님이 운명하시는 모습을 보고 슬픔과 울분에 휩싸여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망연자실하여 그 자리에 ‘주저앉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주로 이루어진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여인들은 십자가 현장에 있었고, 예수님의 시신이 묻힌 장소에도 있었습니다.
이 여인들은 주님을 사모하며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마음이 놓이지 않아 빌라도를 찾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굳게 지켜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62-64절).
<strong>무덤이 굳게 봉인된 상태는 예수님의 부활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일어난 사건임을 입증하는 증거입니다.</strong>
<strong>죽음을 이기신 주님을 신뢰함으로 부르신 자리를 끝까지 지키세요.</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Sat, 04 Apr 2026 07:36:5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4/3 온전히 나의 죄를 담당하심 (마 27:45-56)]]></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43]]></link>
			<description><![CDATA[<strong>마태복음 27:45-56</strong>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이야기합니다.

제 육시(정오 12시)에서 제 구시(오후 3시)까지 3시간 동안 어둠이 온 땅을 뒤 덮었습니다(45절).
이제 예수님은 큰 소리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라고 부르짖으십니다.
이 말씀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뜻입니다(46절).
<strong>십자가는 하나님의 아들이 버림받는 자리였습니다.
세상의 죄를 온전히 담당하시기 위해서 이 순간만큼은 예수님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버림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strong>예수님의 고통은 세상의 누구도 이해할 수 없으며, 경험한 적도, 경험할 수도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겪으신 가장 큰 고통은 육체의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와의 단절이었습니다.
<strong>죄인 된 모든 인간이 받아야 할 버림의 자리를 대신 담당하신 그 고통이었습니다.
이 고통을 참으셨기에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게 된 것입니다.</strong>

예수님이 다시 큰 소리로 부르짖으신 후, 숨을 거두셨습니다(50절).
이때 성전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둘로 찢어졌습니다(51절).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모든 인생에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활짝 열렸음을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또한 땅이 흔들렸고, 바위들이 갈라졌으며 무덤들이 열렸고, 잠자던 많은 성도들이 일어났습니다(51-53절).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성으로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나타날 것을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부활과 직결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지켜본 로마의 백부장은 두려움 속에서 고백합니다.
<strong>“</strong><strong>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strong>(54절).
이 장면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비밀이 드러나고 구원의 길이 열렸음을 보여 줍니다.
믿음의 눈을 뜬 로마의 백부장은 예수님의 죽음을 보며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던 것입니다.
<strong>모두가 떠난 십자가의 자리를 지킨 여인들처럼 어둠의 한 복판에서도 주님의 바라보며 하나님 구원의 역사를 전하는 귀한 통로가 되세요.</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Fri, 03 Apr 2026 07:41:4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4/2 조롱과 수치의 십자가를 담당하신 주님을 생각하자 (마 27:27-44)]]></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42]]></link>
			<description><![CDATA[<strong>마태복음 27:27-44</strong>은 조롱과 모욕 속에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처형당하시는 예수님을 이야기합니다.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넘겨주자 총독의 군인들은 예수님을 총독 관저로 끌고 들어갔습니다(27절).
로마인들은 가능한 공개적으로 형벌을 가하는 것을 선호했기에 온 부대를 예수님 앞에 불러모았습니다.
군인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주홍색 망토를 입혔고(28절).
가시덤불을 잘라 예수님의 머리에 씌운 후 예수님을 희롱하고 얼굴에 침 뱉고, 가시를 쓴 예수님의 머리를 갈대로 때렸습니다(29-30절).
그리고 십자가 처형 장소로 끌고 갔습니다(31절).
예수님은 밤새 심문받았고, 대중 앞에서 재판을 받았고 또한 조롱과 수치를 당하고 매질을 당하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고 처형 장소까지 이동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군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레네 출신 시몬에게 강제로 지고 가게 했습니다(32절).
그런데 억지로 진 십자가였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 시몬과 그의 가족에게는 큰 복이 되었습니다.
<strong>주님 곁에서 지는 십자가는 결코 헛되지 않음을 기억하세요.
구레네 사람 시몬이 지었던 십자가가 그를 생명의 길로 인도했듯이 오늘 내가 지는 십자가 역시 축복으로 통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strong>

군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매달았습니다(35절).
예수님의 좌우편에는 두 강도가 십자가에 달려 있었습니다(38절).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조롱하는 세 부류의 사람들을 봅니다(39-44절).
첫째, 지나가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모욕하면서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비웃습니다(40절).
둘째, 대제사장과 율법학자 그리고 장로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고 놀렸습니다(41-42절).
셋째,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예수님을 욕했습니다(44절).
예수님은 이 모든 모욕과 비웃음에 침묵하셨습니다.
<strong>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기를 구원하실 능력을 스스로 제한하셨습니다.
나를 위해 수치와 조롱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신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세요.</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02 Apr 2026 07:42:5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4/1 마귀의 전략에 휘둘려 살지 말자 (마 27:1-26)]]></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41]]></link>
			<description><![CDATA[<strong>마태복음 27:1-26</strong>은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서 재판 받는 이야기입니다.

유대 법정은 이미 짜 놓은 각본에 따라 예수님을 밤새 심문하고, 로마 법정에 기소할 죄목을 찾아 총독 빌라도에게 넘겼습니다(1-2절).
예수님을 은 30에 판 가룟 유다는 예수님에 대한 판결 결과를 알고 자신의 행위를 후회하며 받은 돈을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돌려주었습니다(3절).
가룟 유다는 무죄한 자의 피를 넘김으로 죄를 지었다고 말하자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우리는 상관없고 네 문제’ 라고 말합니다(4절).
<strong>마귀는 죄를 범한 자들이 회개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strong>가룟 유다는 단지 괴로워하며 뉘우칠 뿐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strong>참다운 회개는 괴로워하며 뉘우치는 것이 아닙니다.
연약하고 비참한 나를 넘어, 여전히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되돌아 서는 것입니다.
죄책감에 눌려 주님을 피하지 말고 염치 불구하고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strong>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으십니다(11-19절).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인지 묻는 빌라도의 질문에 사실을 인정합니다(11절).
그러나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고발에 예수님은 침묵하십니다(12절).
당시 로마법에서 고발에 대한 침묵은 죄를 인정하는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께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13-14절).
이는 예수님께서 이미 겟세마네에서 죽음의 잔을 마시기로 작정했기에 당신의 생명 유지를 위해 변호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당신이 가셔야 만하는 ‘십자가의 길’을 가십니다.
빌라도의 관심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정치적 입지였기에 자신의 아내가 예수님으로 인해 꿈자리가 좋지 않았고
예수님을 의인으로 부르며 풀어줄 것을 제안해도 듣지 않았습니다(19절).
대제사장, 장로 그리고 빌라도는 진리를 외면한 자들입니다.
<strong>우리는 세상의 소리보다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strong>

예수님의 재판을 바라보는 군중들 또한 진리를 외면하고 대신 바라바를 풀어달라고 외칩니다(20-26절).
그리고 저주를 자청하여 자신과 자녀들에게 돌리라고 외칩니다(25절).
이들의 말대로 수십 년 후 예루살렘 멸망하는 역사적 심판을 받습니다.
나 대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 그리스도 만을 바라보세요.]]></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Wed, 01 Apr 2026 09:45:4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3/31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 (마 26:69-75)]]></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40]]></link>
			<description><![CDATA[<strong>마태복음 26:69-75</strong>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심문 장면이 끝나고 성경은 우리의 시선을 베드로에게 향하게 하는데. 베드로는 ‘뜰 바깥에’ 앉아 있었습니다(69절).
그 때 한 여종이 그에게 다가와 당신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다”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집 뜰까지 들어갔지만 목숨의 위협 앞에서 예수님이 심문을 받는 공간까지는 가지 못했습니다.
한 여종의 말에 베드로는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하는 지 모르겠다”며 여종의 말을 부정했습니다(70절).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두려움으로 강하게 부정했습니다.
<strong>우리 또한 두려움 앞에서 무너지는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더 깊이 의지할 수 있습니다.</strong>

베드로의 부인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여종이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라 말하자 베드로는 맹세하고 ‘예수를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71-72절).
또한 곁에 있던 사람이 베드로의 말투를 듣고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즉 예수와 한 패라 말합니다.
베드로는 이번에는 부인으로 그치지 않고 저주하며 맹세하여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말했습니다(73-74절).
성경 본문의 흐름상 베드로가 저주한 대상은 예수님입니다.
<strong>오늘 우리가 믿음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작은 선택들, 타협들이 결국 편안함을 위해 주님을 따르지 않는 삶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죄와 타협이 우리를 더욱 깊은 고통 속으로 이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strong>

베드로가 저주하고 맹세하자 닭이 울었습니다(74절).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할 것이라 예언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했습니다(75절).
이 일 이후에 마태복음의 저자인 마태는 베드로라는 이름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베드로의 실패는 그가 연약한 인간임을 드러낸 사건입니다.
<strong>베드로처럼 최고 수준의 훈련을 받은 신앙인이라고 해도 연약함을 인정할 때, 절망의 자리에서 다시 일으키시는 은혜의 주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ue, 31 Mar 2026 07:53:1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3/30 침묵해야 할 때, 선포해야 할 때 (마 26:57-68)]]></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39]]></link>
			<description><![CDATA[<strong>마태복음 26:57-68</strong>은 예수님을 로마 법정에 세우기전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심문하는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을 체포한 자들이 그를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끌고 갔습니다(57절).
그곳에는 유대 법정의 구성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불리한 거짓 증거를 찾고 있었습니다(59절).
물론 유대 법정은 사형을 판결하고 집행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권한은 로마 법정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예수님에게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밝혀내어 로마와 총독 빌라도의 법정을 압박할 사유를 찾고자 했습니다.
<strong>유대 법정은 이미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론을 내리고 결론에 대한 정당성을 찾고자 불법을 행하였습니다.
</strong>

거짓 증거를 찾고자 했으나 쓸만한 증거를 얻지 못하다가 두 명의 증인이 나타나 왜곡된 증언을 하였습니다(60-61절).
예수님이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고 거짓 증언했습니다.
<strong>예수님은 하나님의 손으로 성전이 무너지리라고 경고하셨으나 직접 성전을 허물고 짓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strong>대제사장은 대답을 촉구하지만 예수님은 침묵하십니다(62-63절).
이는 모든 상황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 있음을 아시고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신 주님의 반응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예수님께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 질문하였을 때, 예수님은 “네가 말하였느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64절).
거짓 증언들 앞에서는 침묵하신 예수님이 대제사장의 질문에 장차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아 구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명확하게 선포하십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다시 오실 왕이심을 분명히 밝히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답변을 들은 대제사장은 옷을 찢으며 분노했습니다(65절).
유대 법정은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때리며 조롱하였습니다(67절).
<strong>수치와 모욕을 당하신 예수님은 고난의 길을 가는 하나님의 종이십니다(사 50:6).
</strong>나의 구원을 위해 모욕과 조롱을 당하신 예수님을 기억하세요.]]></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Mon, 30 Mar 2026 19:04:5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3/23 내게 맡겨 주신 기회를 신실하게 활용하자 (마 25:14-30)]]></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38]]></link>
			<description><![CDATA[<strong>마태복음 25:14-30</strong>은 달란트 비유를 통해 신실함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하늘나라는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기는 상황과 같습니다(14절).
주인은 종들을 개인의 역량에 맞게 5, 2, 1 달란트를 제공합니다(15절).
<strong>달란트 비유는 하늘나라를 섬기도록 주어진 책임을 말합니다.
</strong>구원받은 백성이 맡은 책임은 능력에 따라 달라집니다.
성도 각자에게 주어진 책임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strong>그러나 하나님은 책임의 크고 작음에 따라 신자를 평가하지 않으심을 기억해야 합니다</strong>(21, 23절).
다만 예수님의 평가는 책임을 신실하게 실행했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5달란트, 2달란트를 받은 사람들은 각각 배로 소득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1달란트 받은 사람은 맡긴 돈을 활용하지 않고 땅에 묻었습니다(16-18절).
이제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주인이 결산하러 돌아왔습니다(19절).
‘오랜 후’란 주인이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는 뜻입니다.
5, 2달란트를 받은 사람들이 재산을 배로 늘렸다고 보고하자 주인은 동일하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하면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맡겼고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도록 보상해 줍니다(20-23절).
1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주인을 ‘굳은 사람’이라 스스로 평가하면서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 알았다고 말합니다(24절).
그래서 주인이 무서워 받은 달란트를 땅에 감추었다가 받은 1달란트 그대로 주인에게 돌려줍니다(25절).
주인은 이런 종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책망하며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고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하라고 지시합니다(26-30절).

<strong>예수님이 제자의 사명을 평가하는 기준은 신실함입니다.</strong>
주인이 오랜 후에 오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셨음을 의미합니다.
개인의 역량에 따라 맡기신 일을 신실하게 수행하는 선한 청지기로 주님이 다시 오심을 준비하기를 원하십니다.
<strong>오늘 위로부터 오는 부름을 받은 우리는 내 능력에 맞게 맡기신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기회를 두려움과 게으름 때문에 묻어 두는 자가 아니라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자로 승리하십시다.</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Mon, 30 Mar 2026 19:03:0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3/21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의 태도 (마 24:36-51)]]></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37]]></link>
			<description><![CDATA[<strong>마태복음 24:36-51</strong>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시기에 대한 답변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시기는 하나님 아버지 한 분외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늘에 있는 천사도, 아들도 알지 못합니다(36절).
아들 예수님도 그 날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도 재림의 때를 알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strong>인자, 곧 예수 그리스도는 노아의 때처럼 임하실 것입니다(37절).
</strong>노아가 살던 당시 사람들은 심판을 부정하고, 먹고 마시며 결혼하는 일상이 계속되는 가운데 하나님이 예고하신 대로 홍수가 덮쳐 다 휩쓸어 갔습니다(38-39절).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도 예측하지 못하는 때에 재림을 부정하거나,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strong>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면 준비한 자들과 준비하지 못한 자들의 운명이 달라집니다(40-41절).</strong>

우리가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지 않으면
노아의 시대에 홍수의 휩쓸려간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자들은 “깨어 있는 자들”입니다.
언제 주님이 오실 지 모르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strong>예수님이 가신 길을 신실하게 따라가는 자들은 재림의 시기를 추측하거나 계산하는데 신경을 쓰지 않고 분명히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사람들입니다.</strong>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매 순간 주님 앞에 설 날과 연결되어 있음을 기억하고, 늘 깨어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충성된 종과 악한 종의 비유를 통해 언제 오실 지에 대해 알 수 없지만 이 땅에 허락된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지혜로운지를 가르쳐 주십니다(45-51절).
충성된 종은 주인이 언제 오든 상관없이, 맡겨진 자리에서 충성스럽게 섬깁니다.
반면에 악한 종은 주인이 늦게 올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을 악한 의도로 사용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따라 우리의 마지막은 분명하게 차이가 날 것입니다.]]></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Sat, 21 Mar 2026 08:02:4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3/20 영원한 말씀 위에 굳게 서자 (마 24:29-35)]]></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36]]></link>
			<description><![CDATA[<strong>마태복음 24:29-35</strong>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의 장면을 묘사합니다.

인자, 즉 예수님의 재림은 모든 사람들이 식별할 수 있는 천체의 변화로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변화를, ‘<em>곧 </em><em>해</em><em>는 어두워지고, </em><em>달</em><em>은 그 </em><em>빛</em><em>을 잃고, 별들은 </em><em>하늘</em><em>에서 떨어지고, </em><em>하늘</em><em>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em>’이라 말씀하십니다(29절).
이러한 변화가 나타날 때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며, 땅의 모든 족속이 통곡하고, 권능과 영광으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심을 모든 사람들이 볼 것입니다(30절).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31절)라 말씀하시는데 <strong>구약에서 ‘나팔 소리’는 전쟁과 종말에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을 회복하는 목적으로 함께 사용됩니다.
</strong>그러므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나타나는 하늘의 표적은 종말의 우주적 전쟁이 시작되고, 인자의 승리로 끝날 것임을 암시합니다.

또한 천사들이 하늘의 이쪽에서 저쪽까지 사방에서 그의 택함을 받은 자들을 모을 것입니다(31절).
종말의 전쟁을 최종적으로 승리하신 예수님은 마귀의 수 많은 속임수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들을 모으시고, 그들의 수고와 헌신을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strong>심판과 구원이 함께 임하는 세상의 끝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린 세상은 두려워 떨겠지만
그 날이 오기를 사모하며 기다린 자들은 마침내 영광의 주를 얼굴과 얼굴을 맞대며 보게 만날 것입니다.</strong>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화과나무를 교훈으로 삼아 예수님이 예고하신 징조들을 보면서 예수님의 오심을 짐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32-33절).
또한 “<em>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em>” 선포하십니다(34-35절).
‘이 세대’는 과거, 현재, 미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 방식대로 살려 하는 불신앙의 세대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할 것입니다.
<strong>사라지지 않는 주님의 말씀 위에 삶의 토대를 두고 말씀 안에서 때를 분별하며 깨어 있으십시다.</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Fri, 20 Mar 2026 07:46:1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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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2026/3/19 거짓을 분별하여 믿음을 지키자 (마 24:15-28)]]></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35]]></link>
			<description><![CDATA[<strong>마태복음 24:15-28</strong>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다니엘 선지자의 예언대로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 때가 온다고 말씀하십니다(15절).
이 때에 유대에서 일어날 일을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15-22절).
다니엘의 예언(단 9:27)은 BC 167년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에 의해 예루살렘이 점령당함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는 성전 제사를 금했고, 제우스 신상을 성전에 세워 성전을 모독했습니다.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정복하였을 때도 성전을 더럽혔습니다.

성전이 파괴되는 시기는 참혹한 환난이 닥쳐왔습니다.
그래서 이 때, 그리스도인들은 산으로 도망해야 했습니다(16절).
집 안으로 들어갈 시간도 없고(17절), 중동지역에서 추운 밤에 옷은 필수품이었지만 그것을 챙길 생각도 하지 말고 속히 도망쳐야 합니다(18절).
이러한 때에 임신 중이거나 자녀가 있는 여인에게는 빨리 도망가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현실이 큰 고통입니다(19절).
이 비극은 시대의 끝에 벌어질 비극을 예고하는 그림자와 같습니다(21절).

환난이 너무나 비극적이어서 그날들이 감해지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없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해 하나님이 그 환난의 날들을 줄이신다고 하십니다(22절).
<strong>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을 잊지 않으시고 그들의 눈물과 신음을 기억하십니다.
감당하지 못할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십니다.
</strong>우리가 연약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할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을 인내하고 이겨내도록 도와 주십니다.
<strong>그러므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의지하여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strong>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날 것을 경고하십니다(23-24절).
예수님의 이 경고는 오늘도 변함없이 적용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와도 두려워하거나 이상하게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25절).
그들이 큰 기사와 이적을 보여도 미혹되어서는 안 됩니다(26절).
<strong>혼란한 시대 속에서 거짓을 분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며 견고하게 믿음의 자리를 지켜 나가십시오.</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19 Mar 2026 07:44:4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3/18 신앙 여정의 자리에서 끝까지 견디라 (마 24:1-14)]]></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34]]></link>
			<description><![CDATA[<strong>마태복음 24:1-14</strong>에서 예수님은 말세에 일어날 일들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나오셨을 때, 제자들이 성전의 화려한 건물을 보고 감탄합니다(1절).
그러나 예수님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성전이 무너질 것을 예고하십니다(2절).
이는 사람이 자랑하는 모든 것에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과 복음 위에 세워진 믿음은 영원합니다.
<strong>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신앙은 두려움에 떠는 신앙이 아닙니다.
영원하지 않은 헛된 것에 마음을 두지 않는 신앙입니다.
</strong>예수님은 “<em>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em>” 말씀하십니다(4절).
오늘 우리의 삶에서 무엇인가 무너지고 사라질 때에도 절망으로 끝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다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서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em>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는지</em>”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일반적인 사건(4-8절)과
그리스도인들과 관련된 사건들(9-14절)을 이야기하십니다.
자신이 ‘그리스도’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기고(5절), 전쟁, 기근, 지진 등의 징조가 나타날 것입니다(6-8절).
이는 세상의 끝이 점점 가까이 옴을 알려 주는 것들입니다.
또한 세상의 끝이 오기 전에 신자들은 박해를 받고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왜곡하여 신자들을 속일 것입니다(10-11절).
불법이 성하여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을 것입니다(12절).
<strong>‘</strong><strong>불법’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모든 활동을 뜻합니다.
</strong>박해 앞에서 교회가 진리를 지키지 못하면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은 ‘사랑’이 식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현상이 일어날 때 말씀을 붙잡고 끝까지 견디는 자에게 구원이 있음을 알려 주십니다(13절).
또한 역사의 마지막이 오기 전에 나타날 현상 중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14절).
이 때가 비로소 끝이 올 것입니다.

<strong>“끝까지 견딘다”는 것은 천국을 소망하는 자의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입니다.
</strong>각자 주어진 자리에서 끝까지 믿음으로 서 있기를 바랍니다.]]></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Wed, 18 Mar 2026 07:50:2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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