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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Grace Korean Church Corona</title>
		<link>https://gkccorona.com</link>
		<description>Grace Korean Church Corona</description>
		
				<item>
			<title><![CDATA[2026/5/30 어느 편에 설 것인가 (고전 10:14-22)]]></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92]]></link>
			<description><![CDATA[<strong>고린도전서 10:14-22</strong>은 우상 숭배에 관한 권면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고 말합니다(14절).
이렇게 말하는 대상은 “지혜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고 합니다(15절).
이는 우상 숭배의 문제가 어떤 것인지 분별하여 우상 숭배의 본질을 파악하라는 것입니다.
<strong>우상 숭배는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께로부터 이동된 것입니다.
신앙은 내가 마음 먹는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자신감으로 마귀의 유혹을 이겨 낼 수 없습니다.</strong>

사도 바울은 성만찬과 우상 숭배를 비교하면서 우상 숭배의 잘못된 점을 지적합니다(16-17절).
<strong>성만찬의 잔과 떡은 그리스도의 피와 몸에 ‘참여’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strong>‘참여’한다고 번역된 단어는 ‘코이노니아’로 교제한다는 뜻입니다.
<strong>즉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 하나의 지체가 됩니다.
</strong>성도는 누구에게 속했는지, 누구와 하나로 연결되었는지 성찬식을 통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제물을 먹는 행위는 곧 제단에 참여하는 것과 동일함을 강조합니다(18절).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두고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음식일 뿐이라고 가볍게 지나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성만식에 참여하는 성도는 일상의 삶도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strong>우리가 참여하는 곳이 주님이 함께 하시는 자리가 되어야 주님의 선하심이 드러나는 삶을 살아 낼 수 있습니다. </strong>

사도 바울은 우상 숭배는 귀신과 교제하는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19-20절).
‘귀신’으로 번역된 단어는 그리스도와 복음을 반대하며,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는 악한 영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방인이 행하는 우상 숭배가 하나님을 향한 제사가 아님을 분명히 하며, 우상 숭배를 거절하고 피하라고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strong>하나님과 귀신을 겸하여 섬길 수 없음을 기억하고 오직 하나님 편에 서십시다.</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Sat, 30 May 2026 07:47:3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5/29 하나님이 내주신 길을 외면하지 말라 (고전 10:1-13)]]></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91]]></link>
			<description><![CDATA[<strong>고린도전서 10:1-13</strong>은 출애굽 당시의 역사를 기반으로 신앙의 경각심을 줍니다.

사도 바울은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 조상들을 소개합니다.
모세와 함께 출애굽한 백성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영적 공동체의 조상으로 바울은 소개하고 있습니다(4절).
바울은 출애굽한 백성이 홍해를 건넌 것을 세례 받은 것이라 표현합니다(2절).
그리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반석에서 나온 신령한 음료를 마시며 만나와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었다고 말합니다.
광야에서 백성을 살리신 근원이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께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은혜의 시작과 공급, 그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계셨습니다.
이처럼 신앙은 하나님이 건져 주신 은혜의 길입니다.
<strong>우리는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를 붙들고, 그 은혜 안에 머무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해야 합니다.</strong>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출애굽한 백성의 다수를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고 결국 광야에서 멸망받았습니다(5절).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이스라엘 역사를 ‘본보기’로 삼으라 요청합니다(6절).
하나님이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광야에서 징계하신 이유를 소개합니다(7-10절).
첫째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함으로 하나님께 음행했음을 지적합니다(8절).
음행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뱀에게 물려서 죽었습니다(9절).
하나님이 베푸신 것에 감사하지 않고 내 욕망을 채우는 태도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모세를 원망하다가 파멸시키는 자에게 멸망 당했습니다(10절).
원망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strong>오늘도 우리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살아 내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strong>

사도 바울이 출애굽 당시의 역사를 거론한 것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본보기로 삼아 깨우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11절).
깨우친 자들의 실천적 삶의 모습은 “넘어질까 조심하라”입니다(12절).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감당할 시험을 허락하시고 피할 길도 주십니다(13절).
<strong>우리는 겸손히 자신을 살피고, 주의 말씀을 의지함으로 주님이 내어 주신 피할 길로 걸어가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Fri, 29 May 2026 07:59:4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5/28 복음을 위한 바른 태도 (고전 9:19-27)]]></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90]]></link>
			<description><![CDATA[<strong>고린도전서 9:19-27</strong>은 많은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한 복음을 위한 자세가 무엇인지 이야기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안에서 모든 사람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권리를 포기하고 종이 되려고 한 이유를 밝힙니다(19절).
그것은 <strong>“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strong> 입니다.
바울은 지나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자세가 복음의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고전 9:12).
<strong>바울은 자신이 종이 되려고 한 모습을 이야기합니다(20-22절).</strong>

첫째는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의 모습으로 다가갔습니다(20절).
바울은 복음의 진리 안에서 율법에 대해서는 자유로운 자였습니다.
그러나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을 얻기 위해서 유대인과 같이 율법을 지키는 자가 되었습니다.

둘째는 율법 없는 이방인들에게는 율법 없는 자로 다가갔습니다(21절).
바울은 원래 유대인으로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을 얻기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이는 자신의 사회적, 종교적, 혈통적 권리를 버렸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율법의 내용과 정신을 버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과 관련하여 당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밝혔습니다.
“<em>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em>”(마 5:17)
사도 바울이 롬 10:4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 이시라 고백했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권리를 버림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마침이 되심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셋째는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로, 그 외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으로 다가갔습니다(22절).
<strong>이는 이들 중에 몇 사람이라도 구원에 동참케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23절).</strong>

바울은 운동장에서 달리기하는 경주자를 비유로 들며 자신 또한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로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밝힙니다(24-25절).
<strong>세상 경주자와 자신 모두 ‘상’을 목표로 하지만 받을 상은 다릅니다.
썩어 없어질 상이 아니라 썩지 않는 ‘영원한 면류관’입니다.</strong>
그러면서 ‘영원한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는 “몸을 쳐서 복종하라” 권면합니다(27절).
이는 세상의 흐름에 떠밀려가지 않고 분명한 목표를 향해 가기 위함입니다(26절).
<strong>우리도 영광의 면류관을 얻는 그날까지 믿음의 여정을 완주해야 합니다.</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28 May 2026 07:43:2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5/27 복음이 방해받지 않기 위한 선택 (고전 9:11-18)]]></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89]]></link>
			<description><![CDATA[<strong>고린도전서 9:11-18</strong>에서 바울은 복음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했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전도자가 복음을 위해 전심전력하기에 육적인 것을 거두는 것이 지나치지 않다고 말합니다(11절).
복음 전도자의 이러한 권리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행하라고 주신 명령입니다(13-14절).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유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방해 없이 전파하기 위해서 입니다(12절).
<strong>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몫을 주장하기보다, 복음이 막히지 않도록 기꺼이 양보하는 선택을 합니다.
</strong>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닮아 가기를 소원하며 사는 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내려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받을 자격을 따지기 전에, 형제 자매를 세우고 믿음의 공동체를 살리는 길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strong>바울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음전도자의 당연한 권리가 왜곡될 것을 염려하여 권리를 행사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strong>“<em>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em>”(15절)
이는 복음이 막히지 않도록 권리를 내려 놓은 것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복음을 전해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em>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em>”(16절)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맡기신 의무사항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복음 전도사역을 거절할 수 없는 것은 자신에게 화가 미치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복음 전도사역이 ‘자의’가 아님을 고백합니다.
“<em>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em>”(17절)
바울이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 만난 이후 ‘아무 의지 없음에도’ 성령님은 그의 삶에 강권적인 은혜로 개입하셔서 그를 변화시키고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복음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모든 것을 선택한 바울이 예비된 상을 기대하듯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강권적인 이끄심에 순종함으로 예비된 상을 사모하세요.]]></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Wed, 27 May 2026 07:35:5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5/25 지식이 아닌 사랑으로 공동체를 세우라 (고전 8:1-13)]]></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88]]></link>
			<description><![CDATA[<strong>고린도전서 8:1-13</strong>은 우상 제물에 대한 신앙의 원칙을 이야기합니다.

<strong>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경험하는 중요한 문제 중 우상 제물을 먹는 문제를 거론합니다
</strong>이 문제에 대해 지식이 있다고 하면 자기 확신과 교만으로 변질되어 신앙공동체를 무너뜨릴 가능성이 많습니다.
사랑으로 행하면 덕을 세운다고 말합니다(1절).
그래서 바울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해 아직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한다고 경고합니다(2절).
반면에 우상 제물에 대해 바르게 아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행동하게 됩니다(3절).
<strong>교회나 가정, 즉 신앙공동체는 논리가 아니라 사랑으로 세워지는 곳입니다.
우리의 지식은 신앙공동체를 살리는 방향으로 흘러야 합니다.</strong>

사도 바울은 우상 제물에 대한 교회가 가진 지식을 설명합니다(4-6절).
<strong>세상이 섬기는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한 분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에게 바친 제물 또한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strong>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없는 자들은 우상이 만물의 주관자라고 하지만 오직 한 분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함께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만물이 그분을 위하여 있음을 고백합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은 그저 음식일 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성도가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손해 볼 것도 없고, 음식을 먹는 다고 해서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8절).

그러나 사도 바울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해서 생각 없이 먹을 때의 위험성을 말하며 신중하게 행동하라 권면합니다(9-10절).
성도가 우상의 제단 앞에 앉아 제물을 먹는 모습을 약한 자가 보게 될 때, 그 사람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10절).
“<strong><em>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em></strong>”(9절)

성도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을 걸려 넘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이 약한 사람의 양심을 상하게 하는 행위는 곧 예수 그리스도께 죄를 번하는 것이라 바울은 단언합니다(12절).
<strong>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절제 없이 행동하는 성도가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성도가 믿음 위에 서도록 사랑으로 선택과 행동이 이루어져야 합니다.</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ue, 26 May 2026 19:43:2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5/23 부르신 자리에서 (고전 7:17-24)]]></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87]]></link>
			<description><![CDATA[<strong>고린도전서 7:17-24</strong>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리는 다양하고, 그 자리에서 부르심을 받은 대로 행하라 이야기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다양함이 교회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언급하며 신앙의 원리를 전달하고 있습니다(17절).
“<em>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em>” 입니다.
<strong>오늘 우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리에서 믿음과 선한 양심으로 걸어가야 합니다.</strong>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 다양한 존재로서 할례자와 무할례자의 예를 듭니다(18-20절).
고린도 교회를 포함해서 이방 지역에서 개척된 교회 안에는 할례자인 유대 기독교인과 무할례자인 이방 기독교인이 있어 이 두 부류 가운데는 늘 긴장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회적 갈등 속에서 사도 바울은 할례를 받은 상태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굳이 할례의 흔적을 없애려 하지 말고
무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굳이 할례를 받으려고 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18절).
그러면서 “<em>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em>” 말합니다(20절).
이는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는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한 은사를 하나로 모아 협력할 때, 하나님의 뜻이 교회를 통해 이루어짐을 사도 바울은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strong>하나님은 오늘도 성도와의 아름다운 관계를 통해 맡기신 자리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식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순종을 통해 우리의 삶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드러내세요.</strong>

또한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 다양한 존재로서 종과 자유자의 예를 듭니다(21-22절).
이 두 부류 가운데서도 긴장 관계는 늘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기에 염려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종의 자리에서 자유롭게 되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용하라고 말합니다.
자유자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의 종이라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세우시는 교회는 본질상 평등함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strong>성도는 주님의 피값으로 죄 사함을 받은 그리스도께 속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부르신 자리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야 함을 잊지 마십시오.</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Sat, 23 May 2026 07:41:1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5/22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루는 가정 (고전 7:1-16)]]></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86]]></link>
			<description><![CDATA[<strong>고린도전서 7:1-16</strong>은 성도의 결혼 생활에 대한 실천적 지침을 이야기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의 삶 속에는 늘 육체의 유혹을 마주하는 긴장감이 있음을 말합니다(1-2절).
그래서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가까이하다’라는 단어는 ‘접촉하다’, ‘만지다’의 뜻으로 사도 바울은 욕망을 따라 상대를 대하는 태도를 경계하라는 의미입니다.
이와 같은 육체의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서 결혼하라고 권면합니다.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이제 사도 바울은 결혼 생활에 대한 실제 지침을 말하는데 결혼하는 남자와 여자가 상대방에 대한 의무를 다하라 권면합니다(3절).
여기서 ‘의무’로 해석된 단어는 한 몸을 이루는 상대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strong>결혼 생활에서 남녀가 서로 짊어지는 의무는 ‘육체적 의무’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생활하는 모든 삶의 영역으로 확대됩니다.
</strong>그래서 서로 자기 몸을 주장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4절).
또한 ‘기도할 틈’을 얻는 것을 제외하고 분방하지 말라고 말합니다(5절).
여기서 ‘분방’이란 ‘서로 떨어져 지내는 것’을 뜻합니다.
<strong>상대를 내 만족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고, 서로를 살리고 세우는 언약의 관계로 결혼 생활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strong>

사도 바울은 어느 누구든 결혼을 강제할 수 없다고 말하며 결혼하든, 독신으로 살든 이러한 문제를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연결시킵니다(6-7절).
즉, 어느 한 쪽이든 옳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합니다.
<strong>바울이 말하는 ‘은사’는 맡겨진 자리에서 복음을 따라 살아 낼 수 있는 마음과 태도입니다.</strong>

사도 바울이 결혼하지 않은 자들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8-9절).
<strong>선택에서 중요한 요인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입니다.
</strong>그래서 바울은 절제의 은사가 없는 이들은 결혼하라 권면합니다(9절).

또한 사도 바울은 결혼한 자들에게 엄중한 명령을 합니다.
서로에게 갈라서거나 버리지 말라고 권면합니다(10-11절).
예수님은 간음한 연고 외에 자기 아내를 버리는 것과 또 다른 여자를 취하는 것을 간음죄로 책망하셨습니다(마 5:32).
바울은 신자와 비신자의 결혼에 대해서는 살기를 원할 때, 허용하라 권면합니다(12-16절)
이는 결혼 생활을 통해 복음이 흘러가도록 주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strong>가정에서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루는 성도로 서기를 소망하세요.</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Fri, 22 May 2026 10:51:4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5/21 모든 것에 자유하나 다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고전 6:12-20)]]></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85]]></link>
			<description><![CDATA[<strong>고린도전서 6:12-20</strong>은 성도된 자의 몸이 누구의 소유인지를 이야기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에 자유하지만 자유로부터 나온 행동이 모두 유익한 것은 아니라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이 자신에게 허용되어 있지만, 자신은 아무 것에도 제재를 받지 않겠다”고 말합니다(12절).
이는 바울 자신에게 모든 것을 행할 자유가 있지만, 그것이 유익을 주지 않는다면 그 어떤 육체적 욕구에도 다스림을 받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낸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자유를 권리처럼 주장하며 죄에도 거리낌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러한 방종이 신앙 공동체의 분열과 다툼을 가져왔습니다.

사도 바울은 음식과 몸을 비유로 들어 우리의 몸은 주를 위해 있는 것임을 강조합니다(13절).
우리의 몸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15절).
따라서 우리의 몸을 욕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지체된 몸으로 음행해서는 안 되는 까닭입니다.
음행은 주님과의 관계를 무너뜨리고 영혼을 무디게 만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죄에서 자유롭게 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연합하여 그분과 한 영이 되었습니다(17절).
<strong>음행하는 자리에서 주님과 멀어지는 길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연합하는 길을 선택해야 함을 잊지 마십시오.</strong>

사도 바울은 ‘음란으로부터 도망치라’ 재차 권면하며(18절), 성도의 몸에 대한 소유가 성도 자신에게 있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strong>우리 몸의 소유는 우리 가운데 계신 성령 하나님께 있습니다.</strong>
<strong>우리의 몸은 우리 각자의 것이 아니라, ‘성령의 전’입니다.</strong>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20절).
“<em>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em>”

<strong>성도된 우리는 자신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strong>
유혹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주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strong>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그 자유를 기꺼이 주님께 내어 드리는 믿음의 길을 선택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기쁨이 되는 존재로 끝까지 승리하세요.</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21 May 2026 21:32:3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5/20 갈등을 넘어 성도의 정체성을 기억하라 (고전 6:1-11)]]></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84]]></link>
			<description><![CDATA[<strong>고린도전서 6:1-11</strong>은 교회 내의 성도 간의 소송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 성도 간의 다툼을 ‘성도 안에서’가 아니라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소 고발한 사건으로 한탄합니다(1절).
이는 교회에서 발생한 성도 간의 다툼이 세상 법정까지 옮겨간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낸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한탄하며 우려한 이유는 성도의 자리가 세상을 판단할 자일 뿐만 아니라 천사에 대한 판단까지 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2-3절).
이 특권은 사람에게서 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하나님의 자녀, 곧 구원을 유업으로 얻은 상속자의 권리입니다.

바울의 이러한 권면은 성도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장차 영원한 나라를 함께 상속받을 형제를 당장의 이익을 위해 세상 기준에 판단을 맡겨 버린다면, 이미 성도의 정체성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strong>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성도 간에 갈등이 빚어지는 순간에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strong>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안에서 발생한 성도 간의 다툼을 중재하여 판단할 자가 없는 것을 개탄하고 있습니다(5-7절).
사도 바울은 성도가 피차 고발하는 것을 ‘뚜렷한 허물’이라 말합니다.
그런 까닭에 바울은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나, 속는 것이 낫다’고 권면합니다.
<strong>바울의 권면은 억울함을 무조건 참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대신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strong>

성도 간에 불의한 상황에서 ‘이대로는 못 참겠다’는 마음이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 복음이 드러나는 길은 무엇인지, 신앙 공동체를 지키는 길이 무엇인지 물으라는 것입니다.
<strong>오늘 우리는 나를 위해 십자가를 참으신 주님을 기억하며 형제를 지킴으로써 주님의 길을 따르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strong>

사도 바울은 불의한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말하며 불의한 자들이 누구인지 목록을 이야기 합니다(9-10절).
<strong>우리는 날마다 예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아 그리스도의 성품을 따라야 합니다.</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Wed, 20 May 2026 07:38:4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5/19 복음 안에서의 사랑이란 (고전 5:1-13)]]></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83]]></link>
			<description><![CDATA[<strong>고린도전서 5:1-13</strong>은 고린도 교회 안에 일어난 문제가 무엇인지 이야기합니다.

사도 바울은 제일 먼저 교회 안에 발생한 음란의 문제를 다룹니다(1절).
“<em>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em>”
바울 사도는 음행한 자들을 용인하는 것에 대해 책망합니다(2절).
고린도 교회는 교만하여져서 교회 안에 발생한 음행에 대해 통한히 여기지 않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통한히 여긴다’란 말은 단지 안타깝게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strong>다른 사람의 죄를 자기 죄처럼 품고 회개하는 애통을 말합니다.
</strong>예수님께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말씀하실 때, 사용된 애통과 같은 뜻입니다.

<strong>한 사람의 죄가 신앙 공동체의 거룩을 무너뜨릴 수 있음을
인지하고 함께 죄에서 돌이키고자 힘쓰는 것입니다.</strong>
우리는 공동체 안의 죄를 함께 애통해하며 거룩함을 지키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이들에 대해 심판하라는 것은 교회가 이루고 있는 영적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의미를 간접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육체는 고린도 지역을 떠나 있지만 영적으로는 이들과 함께 있고, 음행한 자들에 대한 심판을 이미 내렸음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3절).
성도 중 음행한 자들을 사탄에게 내어주라 바울은 명령합니다(4-5절).
바울의 명령은 쉽게 해석할 수 없는 어려운 난제입니다.
바울의 명령은 음행한 자들을 교회 공동체 밖으로 내보내 범죄한 개인은 자신의 실상을 발견하여 회개하는 자리에서 영이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교회 공동체는 거룩한 영을 보존하기 위함입니다.
<strong>복음 안에서의 ‘사랑’은 죄를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도록 돕는 것입니다.</strong>

사도 바울은 ‘묵은 누룩을 버리라’ 명령합니다(7절).
‘누룩’은 신앙 공동체 전체를 변질시키는 죄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울이 말한대로 악독과 악의를 버리고 <strong>‘</strong><strong>순전함과 진실함’으로 신앙 공동체를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ue, 19 May 2026 07:44:4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5/18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에 동참한다는 것 (고전 4:9-21)]]></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82]]></link>
			<description><![CDATA[<strong>고린도전서 4:9-21</strong>에서 바울은 성도들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섬기며 신앙생활을 해야 할지 그 실제적인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을 포함한 사도들의 어려운 상황을 이야기합니다(9-13절).
사도는 지금 사형 선고를 받은 자처럼 ‘끄트머리’에 놓여 천사와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있다고 말합니다(9절).
그런데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고백합니다.
“<em>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em>”
이는 하나님이 사도들의 고난을 통해서도 당신의 뜻과 비밀을 나타내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을 포함해서 사도들이 당하는 고난 목록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손으로 일하면서 고된 노동을 하며, 모욕을 당하면서 축복하고, 박해를 받으면 참고, 비방을 받으면 좋은 말로 응답하면서
이 세상에서 쓰레기처럼 되고, 만물의 찌꺼기처럼 되었습니다’(11-13절).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사도들은 실패한 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복음 때문에 겪는 이 모든 일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라 말합니다.
<strong>십자가의 길은 어리석어 보이지만,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참여하는 길임을 기억하십시오.
사람의 평가보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선택하는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길로 똑바로 걸어갈 수 있습니다.</strong>

사도 바울은 이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사도들과 같이 복음을 위해 고난의 길, 곧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에 동참하라고 권면합니다(14-16절).
<strong>사도 바울이 “<em>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em>”(16절) 는 권면은 자신이 앞에서 나열한 고난의 삶으로 성도들을 초청하는 것입니다.
</strong>우리는 말씀 앞에서 찔림이 있다면, 말씀 앞에 정직하게 서서,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고 아버지의 훈계를 은혜로 받아야 합니다.
<strong>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습니다”(20절).
</strong>이는 화려한 말이나 외형적인 성과가 아니라 십자가의 복음이 삶을 변화시키는 힘, 즉 성령 안에서 순종과 인내, 사랑이 드러나는 열매임을 기억하십시오.]]></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Mon, 18 May 2026 07:43:2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5/16 하나님의 성전됨을 기억하라 (고전 3:16-23)]]></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81]]></link>
			<description><![CDATA[<strong>고린도전서 3:16-23</strong>은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strong>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올바른 건축이 필요함을 강조하며 ‘올바른 건축’에 의해 지어진 것은 ‘하나님의 성전’이라 말합니다</strong>(16절).
“<em>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em>”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를 세우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strong>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인 이유는 교회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기 때문입니다.</strong>
사도 바울은 거짓 교리로 교회를 분열시키고,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훼방하는 일은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불러올 만큼 큰 죄라고 경고합니다(17절).
동시에 우리 또한 하나님을 모신 살아 있는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것으로든 성전인 우리 자신을 더럽히는 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자신을 지혜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고 경고합니다(18절).
이는 세상에서 지혜자가 되기 위해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에 순종함으로 세상에서 어리석은 자가 되어 참다운 지혜자가 되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strong>오늘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주의 일을 하는 자들이 육신의 지혜를 따르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strong>

사도 바울은 세상의 지혜를 압도하는 하나님의 지혜를 이야기합니다(19-20절).
“<em>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em>”
‘어리석다’고 표현한 단어는 하나님의 지식과 비교할 때, 무가치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지혜자들을 ‘자기 꾀’에 빠지게 하며,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우리의 소유로 주셨기 때문에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21절).
만물을 가진 성도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인 까닭입니다(23절).
<strong>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정체성을 붙들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도구가 되세요.</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Sat, 16 May 2026 07:38:2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5/15 예수 그리스도 위에 무엇을 세울 것인가 (고전 3:1-15)]]></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80]]></link>
			<description><![CDATA[<strong>고린도전서 3:1-15</strong>은 고린도 교회가 직면한 분열의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분열된 상황에서 교회 성도들을 신령한 자들로 대할 수 없음을 한탄합니다.
“<em>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em>”(1절)
고린도 교인들은 ‘육신에 속한 자”와 같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완곡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라 불렀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한 까닭은, 교회 안에 들어왔지만, 성령을 따라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살아가지 않고 세상 가치를 따라 육신을 자랑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3절).
교회 안에 ‘시기와 분쟁’으로 분열된 영적 현실을 말합니다.

이제 바울은 교회에 분열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 원인을 말합니다(4-9절).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사도 바울과 아볼로를 거론하며 누구 편이냐에 따라 서로 시기하며 분쟁했습니다.
바울은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며 고린도 교인들이 과도하게 추앙하며 신봉하는 잘못된 길을 책망합니다.
그러면서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사역을 아볼로의 사역과 비교하며 명확하게 정리해 줍니다.
“<em>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문을 주었으되</em>”(6절)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7절)
바울 자신과 아볼로는 각자에게 주신 사명대로 순종한 것이지 아무 것도 아닌 자들임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오직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라 고백합니다.
<strong>오늘 우리의 인생과 사역에서 내 공로를 지우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람을 숭배하는 어리석은 자리에서 벗어나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strong>바울은 아볼로를 동역자로 소개합니다.
<strong>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복음 사역에서 누가 먼저고 나중인가는 없습니다.</strong>

사도 바울은 동역자들의 사역을 건축에 비유합니다(10-15절).
바울은 자신을 지혜로운 건축자로 든든한 기초를 놓았습니다.
<strong>견고한 기초(터)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strong>
바울은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strong>오늘 우리는 변하지 않는 하나님 말씀 위에 인생을 세워 나아가야 합니다.</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Fri, 15 May 2026 22:15:0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5/14 성령 받은 자의 유익 (고전 2:10-16)]]></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79]]></link>
			<description><![CDATA[<strong>고린도전서 2:10-16</strong>은 하나님의 깊은 것을 전달하시는 성령님을 이야기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비밀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영에 대해 진술합니다(10절).
“<em>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em>”

<strong>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비밀이 우리에게는 숨겨지지 않았는데 이는 성령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전달해 주신 까닭입니다.
</strong>성령님은 하나님의 모든 것과 깊은 것을 통달하십니다.
‘통달하다’로 번역된 단어는 ‘숙고하여 살피다’는 뜻입니다.
성령님만이 하나님의 깊음을 아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도 성령님의 깊음을 아십니다.
<strong>하나님과 성령님 사이에 서로 통달하신 지식은 하나님이 신자들에게 성령을 나누어 주심으로 확장됩니다.</strong>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령님만이 하나님의 일을 아신다고 말합니다(11절).
“<em>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em>”

<strong>하나님의 계획과 마음은 오직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 만이 아십니다.
</strong>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이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가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지혜로는 하나님 은혜의 신비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12-14절).
성도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습니다(12절).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이란 예수님이 약속하신 하나님의 영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님과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strong>성령님이 오신 이유는 세상 가운데 감춰진 하나님의 비밀, 곧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일을 성도들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strong>그러므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복음의 비밀’은 성령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전해야 합니다.

바울은 영적인 것과 영적인 사람, 육적인 것과 육적인 사람의 본질적인 간극과 차이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가르칩니다(15-16절).
<strong>신령한 판단에 따라 행하는 사람의 행위에 온전함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성령을 선물로 받은 자들은 ‘주의 마음’을 소유한 까닭입니다.</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14 May 2026 07:42:1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5/13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살라 (고전 2:1-9)]]></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78]]></link>
			<description><![CDATA[<strong>고린도전서 2:1-9</strong>은 바울의 복음 전도 사역에 핵심 원리를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합니다(1절).
그래서 사람들에게 ‘말을 잘한다’는 육체의 자랑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세상이 어리석게 여기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고 바울은 고백합니다(2절).
그러므로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약하고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다”고 또한 고백합니다(3절).
<strong>바울은 오직 하나님만 드러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 또한 날마다 자신의 욕심이 복음의 통로를 막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strong>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지 자세히 설명합니다.
<strong>바울은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4 상반절).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전하였습니다(4 하반절).
</strong>바울이 이런 방법으로 복음을 전한 목적이 있습니다.
복음을 듣는 자들의 믿음을 위해서 입니다.
즉, 복음을 듣는 자들이 말에 설득된 믿음이 아니라 <strong>하나님의 능력을 통한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5절).
</strong>우리는 흔히 말로 잘 설명하여 상대를 설득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말로 변하지 않고 성령님의 역사로 변합니다.
<strong>사람의 말로 설득된 믿음은 더 화려한 말에 흔들립니다.
반면에 성령님의 역사로 세워진 믿음은 결코 무너지거나 빼앗기지 않음을 기억해야 합니다.</strong>

바울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한다”고 합니다(6절).
‘온전한 자들’로 번역된 단어는 성장의 마지막 단계에 이른 장성한 자를 뜻합니다.
<strong>믿음이 장성한 자는 세상의 지혜나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를 구하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의 왕이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합니다(7절).
</strong>세상의 통치자들에게 감추어진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것입니다.
<strong>하나님의 능력이 나의 가정과 일터에 나타나기를 구하며 성령을 의지하세요.</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Wed, 13 May 2026 07:42:0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5/12 자랑의 방향을 바꾸라 (고전 1:26-31)]]></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77]]></link>
			<description><![CDATA[<strong>고린도전서 1:26-31</strong>은 자랑할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고 권합니다(26절).
<strong>하나님의 ‘부르심’ 속에는 세상이 미련하게 생각하는 ‘하나님의 지혜’가 담겨져 있는 까닭입니다.
</strong>바울은 ‘부르심’에 대해 성경 여러 곳에서 사용했는데 본문에서는 ‘육체를 따라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강조합니다.
“<em>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em>”(26절)
이는 우리의 육체적 조건이나 행위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은혜를 따라 우리를 부르셨습니다(딤전 1:9).
<strong>하나님은 당신의 능력이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약한 자와 미련한 자와 없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strong>

바울은 세상의 약자를 부르신 이유를 밝히 알려 줍니다(27-28절).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강자와 지혜자들을 책망하시기 위함입니다.
“<em>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em>”(27-28절)

<strong>하나님은 오늘도 우리가 대단해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부족한 우리를 통해 당신의 뜻을 나타내시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strong>하나님은 우리의 강함보다 약함을 통해 일하시며 그 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만을 고백하게 하십니다.

세상의 약자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이 무엇인지를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제시합니다(29절).
“<em>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em>”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육체는 없습니다.
바울은 지금 고린도 교회가 분열한 요인이 어떤 것인지 간파한 것입니다.
<strong>교인들 중 자신이 남과 비교해서 우월하다는 것을 ‘자랑’하는 터 위에서 교회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strong>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30절)
<strong>성도가 자랑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는 믿음입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만’ 자랑함으로 자랑의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ue, 12 May 2026 07:40:2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5/11 십자가의 능력 (고전 1:18-25)]]></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76]]></link>
			<description><![CDATA[<strong>고린도전서 1:18-25</strong>은 세상의 지혜보다 하나님의 지혜가 월등함을 이야기합니다.

<strong>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의 도에 대한 위대한 정의를 내립니다(18절).
</strong>“<em>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em>”
‘멸망하는 자들’이란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과 세상의 지혜를 추구하는 헬라인(그리스인)을 가리킵니다(22절).
‘십자가의 도’를 놓고 멸망과 구원의 차이를 바울은 이사야 29:14을 인용하여 강조합니다.
“<em>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em>”
<strong>오늘도 십자가 복음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멸망의 칼날이 되고 믿고 구원을 얻는 이들에게는 죽음을 이기는 승리의 칼날이 됩니다.</strong>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를 강조하기 위해 세상의 지혜자, 선비, 변론가를 언급합니다(20절).
‘지혜자’는  생각과 지식 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 원숙한 경지에 이른 사람입니다.
‘선비’는 당시 기록관이라는 의미로 전통과 규율에 박식한 사람입니다.
‘변론가’는 논쟁에 능한 전략가란 뜻을 가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환영하는 이들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 없다고 바울은 선언합니다(21절).
<strong>바울은 세상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를 ‘전도의 미련함’과 연결합니다.</strong>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에, 하나님은 세상이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복음을 통해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길 기뻐하셨습니다.
세상이 미련하다고 생각하고 추구하지 않는 전도 속에 하나님의 지혜, 즉 ‘십자가의 도’가 나타난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의 눈에 나무에 달리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여겨 예수님과 십자가를 거리낍니다.
지혜를 찾는 헬라인에게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죽으셨다는 복음은 미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strong>오늘 나의 약함을 십자가 앞에 내려 놓을 때, 나의 약함 위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함을 기억하세요.</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Mon, 11 May 2026 08:30:1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5/9 하나님의 복이 흘러가게 하라 (룻 4:13-22)]]></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75]]></link>
			<description><![CDATA[<strong>룻기 4:13-22</strong>은 보아스가 룻을 아내로 맞아 다윗의 조상이 되는 아들을 낳은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룻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아들을 낳게 하셨습니다(13절).
생명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선언합니다.
나오미에게 손자를 얻자 마을 여인들은 하나님을 찬송합니다(14-15절)
“<em>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em>”

그리고 성경은 나오미가 아기의 양육자가 됨을 이야기합니다(16절).
“양육자”로 번역된 단어는 ‘견고하게 하다’, ‘돌보다’란 뜻으로 지속적으로 양육하고 책임을 진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또한 여인들은 나오미에게 룻을 가르켜 “<em>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 </em>라고 평가합니다.
<strong>성경에서 ‘일곱’이란 숫자는 ‘완전함’을 상징합니다.
</strong>당시 여인에게 일곱 아들이 있다는 것은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완전한 복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strong>성경은 여인들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룻 한 사람이 세상의 그 어떤 조건보다 더 귀하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strong>룻이 나은 아들, 오벳은 다윗의 할아버지가 되며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는 최고의 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제 마을 여인들은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고 말합니다(17절).
이 말은 고대 공동체에서 ‘후손’ 곧 ‘가문의 회복’을 뜻합니다.
이 아이는 룻의 아들이자 나오미 집안의 미래라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어둠 가운데 신음하며 살아가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아들 예수님을 보내고자 하실 때,
천사를 통해 마리아를 만나 주시고 당신의 뜻을 알려 주셨습니다(눅 1:31-37).
이 말씀에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하며 응답했습니다(눅 1:38).
<strong>하나님은 언제나 화려한 조건이 아니라 순종으로 응답하는 신실한 한 사람을 통해 당신의 구원 역사를 완성해 나가심을 잊지 마세요
우리의 작은 순종은 결코 나에게서만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 들어갑니다.</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Sat, 09 May 2026 08:07:4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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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2026/5/8 누군가의 소망의 통로가 되자 (룻 4:7-12)]]></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74]]></link>
			<description><![CDATA[<strong>룻기 4:7-12</strong>은 보아스가 룻에 대한 책임을 공적으로 선언한 이야기입니다.

집안의 책임을 지을 우선권이 있던 친족이 자신의 신을 벗어 보아스에게 줌으로 권리 이전을 확정합니다(8절).
유대인들에게 오늘날의 공증 시스템과 같은 독특한 관습이 있었는데 거래를 할 때 자기 신발을 상대방에게 건네 주었다고 합니다(7절).
<strong>‘</strong><strong>신발’은 매입하는 땅을 밟고 다스릴 권리를 상징합니다.
</strong>이제 보아스는 그 신발을 넘겨받음으로 룻과 그 가문의 재산을 되찾을 법적 권리와 의무를 공식적으로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보아스는 성문에 모였던 모든 백성과 장로들에게 자신 “산 것”에 대해 모두 ‘증인’이 되었다고 선언했습니다(9절).
보아스가 구입한 것과 룻을 아내로 맞이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em>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em>” 때문입니다(10절).
<strong>보아스의 희생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생명의 통로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strong>보아스가 룻의 과거와 엘리멜렉 가문의 빚을 전부 떠안았듯이 <strong>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허물을 전부 떠안으시기 위해 십자가에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렸습니다.
</strong>보아스의 결단으로 의지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룻이 유력한 자의 아내가 되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strong>이처럼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셨다”고 선언하신 예수님을 믿는 오늘 우리가 정말 가운데 신음하던 마귀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strong>

성문에 모인 백성과 장로들은 보아스의 선언에 모두 환영하며 축복합니다(11-12절).
이 환영과 축복은 유대 공동체에 들어올 수 없는 이방 여인을 공동체의 한 일원이 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승인한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을 세운 야곱의 아내인 라헬과 레아처럼 유다 가문이 끊어질 위기에서 가문의 대를 잇게 한 다말처럼 룻이 번성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축복을 뛰어 넘어 룻의 자손을 통해 태어날 후손은 다윗왕을 넘어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졌습니다.
<strong>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하며 누군가의 끊어진 소망을 이어주는 복의 통로가 되기를 소망하며 살아내십시다.</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Fri, 08 May 2026 07:49:1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5/7 작은 희생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룻 4:1-6)]]></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473]]></link>
			<description><![CDATA[<strong>룻기 4:1-6</strong>은 집안의 일원으로 룻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보아스는 성문으로 올라가서 앉아 있다가 마친 그곳을 지나가는 집안의 책임을 1차적으로 져야 할 사람을 만났습니다(1절).
<strong>당시 ‘성문’은 단순한 출입구가 아닙니다.
판결, 거래, 증언이 이루어지는 공적인 장소입니다.
</strong>또한 보아스는 마을의 장로 열 명을 불러 안혔습니다(2절).
유대인 공동체의 장로는 공동체의 대표로서 재판, 합의 그리고 증인으로서의 권위를 가진 자들입니다(신 19:12).
<strong>유대인들에게 ‘10’이란 숫자는 ‘충분성,’ ‘완전성’을 상징합니다.</strong>
그러므로 2-3명의 증인으로도 충분하지만 ‘열 명’을 세운 것은 이방 여인인 룻을 가족 공동체에 편입하기 위해 공동체가 인정할 만큼의 무게를 두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보아스는 법적으로 집안의 대소사를 책임 지을 1순위의 자격이 있는 친족에게 나오미의 남편인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고 내놓았다고 말합니다(3절).
당시 유대인들에게 ‘땅’은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었습니다.
가문에 배당된 땅으로 가문의 생존과 이름의 존속과 직결되었습니다.
<strong>집안 사람 중 생계수단으로 땅을 팔려고 할 때 다른 가문에 팔지 않고 집안 사람 중 형편이 나은 사람이 구입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기업 무를 자”, 즉 집안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입니다.</strong>

보아스의 말을 들은 사람은 자신이 “무르겠다”, 즉 책임지겠다고 말했습니다(4절).
그는 저렴한 가격에 부동산을 취할 좋은 기회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이는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갖기 보다 재산의 손익을 더 따진 것입니다.
지혜로운 보아스는 룻의 문제를 먼저 말하지 않고 가문의 공동체가 쉽게 수용할 수 있는 땅의 의무에서 시작했습니다.
이제 보아스는 땅을 사겠다는 사람에게 결정적 조건을 덧붙입니다(5절).
집안 사람이 밭을 사는 순간, 보아스는 죽은 자의 기업을 ‘모압 여인 룻’ 의 이름으로 세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룻을 아내로 맞아 가문이 끊기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그 사람은 땅을 사는 것을 포기하겠다 선언합니다(6절).
룻과 결혼하여 자식을 낳으면 자신의 재산에 손해가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strong>사명을 감당한다는 것은 손익계산이 아니라 작은 희생과 헌신임을 기억해야 합니다.</strong>]]></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07 May 2026 07:52:4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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