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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Grace Korean Church Corona</title>
		<link>https://gkccorona.com</link>
		<description>Grace Korean Church Corona</description>
		
				<item>
			<title><![CDATA[2026/10/13 은사 주신 주님의 뜻을 따라 (역대상 24:1-31)]]></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588]]></link>
			<description><![CDATA[<strong>역대상 24:1-31</strong>은 제사장 반열과 제사장을 도와 성전 일을 하는 레위인 반열을 조직하여 성전 중심의 예배 공동체를 세우는 이야기입니다.

아론의 자손 중 나답과 아비후가 아들 없이 죽은 뒤, 제사장 직분은 엘르아살과 이다말의 자손에게 이어졌습니다(1-2절).
다윗은 사독과 아히멜렉과 함께 아론 자손을 직무에 따라 나누고, 제비 뽑아 피차 공평하게 24 반열로 세웠습니다(1-19절).
각 반열은 하나님이 아론에게 명하신 규정을 따라 성전에 들어가 직무를 수행했습니다.

이러한 조직은 다윗이 일방적으로 명령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 가문의 대표들과 여러 지도자들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또한 공평하게 제비 뽑아 공평하게 직무를 맡았으며 서기관 스마야를 통한 기록을 공적으로 보고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다윗이 제사장들을 치밀하게 공적으로 조직한 것은 성전 예배가 사람의 영향력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지속되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예배와 섬김은 사람의 재능이나 지위를 드러내는 자리가 아닙니다.
예배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 만을 높이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직무를 나누고 사람을 세울 때에도 개인적인 친분이나 영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 공동체가 신뢰할 수 있는 공정한 기준과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다윗은 레위 자손도 가문별로 제비를 뽑아 직무를 나누었습니다(20-31절).
특별히 “장자의 가문과 막내 동생의 가문이 다름이 없이” 아론 자손처럼 다윗왕과 제사장과 레위 우두머리들 앞에서 제비 뽑혔다고 기록합니다(31절).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성전에서 맡은 직무들은 서로 달랐지만 그 직무를 정하는 데에는 같은 공적 절치와 질서가 적용되었음을 밝힙니다.
이는 자신이 맡은 일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소홀이 여기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다른 직무를 맡은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여 낙심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에 따라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해야 불필요한 경쟁과 혼란을 줄일 수 있고 질서 있는 예배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도 공동체의 질서 안에서 맡은 사명을 책임 있게 감당할 때, 하나님은 높임을 받으시고 믿음 공동체는 든든히 세워질 수 있습니다.]]></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ue, 13 Oct 2026 07:48:3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10/12 찬송이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 (역대상 23:1-32)]]></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587]]></link>
			<description><![CDATA[<strong>역대상 23:1-32</strong>은 성전이 완공된 후 지속적으로 예배를 담당할 레위 지파의 조직과 직무를 이야기입니다.

다윗은 노년에 아들 솔로몬을 왕으로 삼고, 솔로몬의 평화로운 통치와 성전 예배를 체계적으로 정비합니다.
성전 일을 담당한 레위인의 수를 3만 8천명으로 보고하며 성전 봉사일을 분배합니다(2-5절)
레위인이 성전에서 맡을 직무는 ‘성전의 일을 보살피는 것’ ‘관원과 재판관’, ‘문지기’, 악기로 찬송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레위의 세 아들에 따른 가문별로 조직을 만듭니다(6-24절).
레위의 세 아들들인 게르손, 그핫, 므라리 가문에 속한 이름이 역대기상에서 상세하게 기록된 이유가 역대기상하를 기록한 목적에 나타나 있습니다.
역대기상하를 기록한 목적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일깨우고, 하나님 중심의 정치와 예배 회복을 촉구하기 위함입니다.
왕을 세우는 일과 성전을 준비하는 일이 중요하듯이 이에 못지 않게 성전 안에서 예배를 돕는 사람을 세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성전에서 맡을 직무도 각각 구별한 이유는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다양한 은사를 가진 자들이 조화를 이루어 나아갈 때 온전해 질 수 있습니다.
오늘도 교회는 특별한 은사를 받은 몇 사람의 섬김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은사를 가진 사람들을 각자의 자리에서 조화를 이룰 때
신앙 공동체의 예배가 온전해 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평강을 당신의 백성에게 주시고 예루살렘 성전에 영원히 계실 것을 선언합니다(25절).
그래서 레위인들이 더 이상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처럼 성막과 기구를 이동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26절).
이제 레위인의 직무는 성막 운반에서 성전 봉사로 재정비 된 것입니다.
그들은 아론 자손을 도와 성전의 뜰과 골방을 돌보고, 진설병과 고운 가루를 준비하며, 아침과 저녁마다 서서 여호와께 감사하고 찬송했습니다(28-31절).
‘찬송하다’로 번역된 단어는 단순히 노래한다는 의미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자랑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린다는 뜻입니다.
시대가 변해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의 존재 목적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 내게 맡기신 일이 무엇인지 살펴보며 예배자로서 바로 서야 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ue, 13 Oct 2026 07:46:5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10/10 은혜로 다시 열린 자리에서 (역대상 21:18-22:1)]]></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586]]></link>
			<description><![CDATA[<strong>역대상 21:18-22:1</strong>에서 하나님은 죄와 심판의 현장을 예배와 속죄의 장소로 변화시키십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선견자 갓을 통해 다윗에게 제단을 쌓으라고 지시하고 갓으로 그대로 다윗에게 전하며 다윗은 즉각적으로 순종합니다(18-19절).
다윗이 오르난의 타작 마당으로 올라가는 동안 밀을 타작하던 오르난이 천사를 보고 네 아들과 함께 숨었습니다.
그 때에 오르난이 다윗의 얼굴을 보고 땅에 대고 절했습니다(20-21절).
다윗은 오르난에게 상당한 값에 타작하는 곳을 자신에게 넘기라 요청합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린 하나님의 재앙을 그치게 하려 한다고 말합니다(22절).
이에 오르난은 타작마당 뿐 아니라 번제에 쓸 소, 땔감으로 타작 기구, 소 제물로 사용할 밀까지 모두 드리겠다고 제안합니다(23절).
그러나 다윗은 값없이 취하여 번제를 드리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24절).
상당한 값을 치르는 것이 다윗에게는 양보할 수 없는 원칙입니다.
이는 자신의 범죄에 대한 회개의 제사였기에 남의 것을 값없이 얻어 하나님께 드릴 수 없는 까닭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잘못을 인정하는 말에 그치지 않습니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을 다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길로 돌이키는 행동이 수반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또한 회개를 입술의 고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바로 잡아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다윗이 오르난에게서 값을 주고 구입한 곳에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사를 드리며 여호와께 아뢸 때, 여호와께서 하늘로부터 불을 번제단 위에 내려서 응답하셨습니다.
여기서 여호와께서 불을 내리셨다는 것은 단순히 제사를 받으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새로운 예배의 장소로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솔로몬은 오르난의 타작마당이 있던 모리아산에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역대하 3:1).
우리는 죄와 허물로 실패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로 다신 열린 자리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성전된 우리가 성결한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Sun, 11 Oct 2026 23:07:5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10/9 하나님의 긍휼 (역대상 21:9-17)]]></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585]]></link>
			<description><![CDATA[<strong>역대상 21:9-17</strong>은 인간의 죄에 대한 책임을 물으실 뿐 아니라 징계 중에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이야기합니다.

여호와께서 선견자 갓을 통해 다윗에게 세가지 징계 중 선택지를 제시하십니다(9-10절).
다윗은 자신의 불안감으로 인구조사를 하게 했던 자신의 죄에 대해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습니다.
“<em>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em>”(8절)
분명 죄에 대한 회개는 하나님의 용서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죄를 지은 것에 대한 책임은 물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12절).

다윗은 세 가지 징계 중 하나님이 직접 집행하시는 것, 즉 사흘 동안 전염병과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하는 것을 택합니다(13절).
이는 자신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없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여기서 다윗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라 고백합니다.
다윗이 자신의 죄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인정하면서도 그 결과를 하나님의 긍휼 안에서 감당하려는 믿음의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이는 다윗이 죄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긍휼에서 나오는 과분한 사랑에 기대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공의를 아는 사람은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기에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하나님은 징계 중에도 멈추시는 긍휼을 보이십니다(15-17절).
천사가 예루살렘을 멸하려 할 때에, 여호와께서 보시고 뉘우치시며 징계를 멈추시는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15절).
여기서 ‘뉘우치사’로 번역된 단어는 하나님이 실수하셔서 후회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백성을 긍휼이 여기셔서 심판을 거두셨다는 뜻입니다.
‘긍휼’이란 어머니가 태중의 자식을 품는 애끓는 사랑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천사가 멈춰 선 ‘오르난의 타작마당’은 훗날 성전이 세워질 모리아 산이었습니다.
또한 그곳에서 드려질 모든 제사는 갈보리 십자가의 완전한 제사를 가리켰습니다.
하나님의 긍휼로 심판이 멈춘 자리에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긍휼은 변함없이 우리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자신을 맡길 때, 은혜의 역사가 이루어 진다는 것을 믿으세요.]]></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Sun, 11 Oct 2026 23:06:23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10/8 다시 살 길을 주시는 통로 (역대상 21:1-8)]]></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584]]></link>
			<description><![CDATA[<strong>역대상 21:1-8</strong>은 다윗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다윗의 회개를 이야기합니다.

본문의 시작은 “<em>사탄이 일어나…. 다윗을 충동하여</em>”입니다(1절).
여기서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적 존재로 보거나 또는 다윗을 늘 불안하게 만든 군사적, 정치적 위협 세력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둘 중 어느 견해를 따르든 다윗이 그 충동에 굴복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보다 군사력을 의지하여 인구조사를 강요했던 것입니다(2절).

같은 내용인 사무엘하 24:1에서는 ‘여호와께서 다윗을 격동시켰다’고 기록했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죄 짓게 하고 벌하시는 분으로 오해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사탄이 일어나 다윗의 마음을 충동했다고 기록합니다.
역대기상은 요압의 만류에도 인구조사를 강행한(3절) 다윗의 책임을 더욱 부각시키려는 의도였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신경 쓰는 것들, 즉 나에 대한 사람들의 평판, 숫자, 내 집, 물질, 사역의 크기 들이 그 자체로는 결코 악하거나, 죄 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믿음의 크기를 평가하는 잣대가 되거나 하나님의 능력보다 더 의지하게 될 때 문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충동적 판단에 기대지 말고 오직 말씀 앞에서 자신이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본문 7절과 8절은 인구조사 사건으로 하나님의 징계와 다윗의 참회 기도가 이어졌음을 묘사합니다.
“<em>하나님이 이 일을 악하게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em>”(7-8절)

다윗의 회개 기도문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 죄의 주체가 자신임을 고백합니다.
둘째, 죄의 해결이 하나님의 용서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셋째, 자신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 어리석은 죄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범죄에 대해 하나님은 다윗에게 책임을 물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회개한 다윗을 통해 성전과 예배의 회복을 준비케 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회개의 자리를 넘어 예배하며 살아갈 길을 열어 주십니다.]]></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08 Oct 2026 17:05:3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10/7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을 붙드세요 (역대상 20:1-8)]]></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583]]></link>
			<description><![CDATA[<strong>역대상 20:1-8</strong>은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승리가 계속 이어짐을 이야기합니다.

랍바가 함락됨으로 암몬 전쟁의 최종 결말을 다룹니다(1-3절).
이스라엘 군대가 암몬과 전쟁하는 사이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었습니다(1절)
이후 다윗은 함락된 랍바에 도착해 그들의 왕의 왕관을 취해 자신의 머리에 씁니다.
이는 다윗이 자신의 호의를 무시하고 도발한 암논에 대한 완벽한 복수를 이루게 하였음을 상징하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암논의 군사적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강행했습니다.
이제 다윗과 이스라엘의 군사들이 예루살렘으로 복귀함으로 다윗의 완벽한 승리로 마무리됩니다.
이 이야기는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속에서 성취된 다윗의 군사적 승리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군사들이 암몬과 최후의 전쟁을 치를 때, 예루살렘에 머물러던 다윗이 우리아를 죽음으로 내몰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죄를 상세하게 다룬
사무엘하 11:2-12:25과는 달리 역대상 본문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는 이미 알려진 다윗의 범죄보다, 회개한 죄인을 다시 세워 다윗에게 약속한 것을 신실하게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포로지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강조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다윗의 경우를 보더라도 영적인 위기는 모든 일이 잘되어 마음의 긴장을 놓아 버릴 때 시작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베드로전서 5:8에서 경고한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m>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em>”
오늘도 모든 것이 평안하다 느낄 때 일수록 마음을 늦추지 말고 더욱 깨어 예배를 사모하며 기도하십시오.

암몬과의 전쟁이후 블레셋 거인들과의 세 차례 싸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4-8절).
후사 사람 십브개, 야일의 아들 엘하난,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 요나단이 블레셋의 거인들과 싸워 승리했습니다.
그러면서 본문은 “<em>다윗의 손과 그 신하의 손에 다 죽었더라</em>”고 결론짓습니다.
이 결론은 두가지 의미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나님을 대적한 거인들은 쓰러졌지만 죄로 인해 쓰러진 다윗은 그가 회개함으로 하나님이 다시 일어나 승리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의 보혈을 의지하여 회개하고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모든 자를 하나님은 용서해 주시고 다시 일으켜 세우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Wed, 07 Oct 2026 16:37:3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10/6 하나님이 가장 선한 방법으로 일하실 때 (역대상 19:8-19)]]></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582]]></link>
			<description><![CDATA[<strong>역대상 19:8-19</strong>은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무엇을 의지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자시들의 판단과 군사력을 의지한 암몬, 아람과 불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한 이스라엘을 대조합니다.

다윗은 자신을 도움을 준 암몬의 선대왕 나하스가 죽자 선의의 마음으로 사신을 파송했지만 암몬의 오해와 도발로 이스라엘을 대항하여 쳐들어 왔습니다(대상 19:1-7).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요압과 용사의 무리를 신속하게 파견합니다(8절).
암몬 군대는 성문 앞에 진을 쳤고, 아람의 전차 부대는 넓은 들판에 자리 잡았습니다(9절).
요압은 자신이 이끄는 정예부대를 아람 군대와 맞서게 하였고 형제 아비새가 이끄는 정예부대는 암몬 군대와 대치하도록 했습니다(10-11절).
그리고 요압은 아비새에게 상호 지원 전략을 제시합니다(12절).
그런데 요압은 전략을 세우는 것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전력을 신앙적 권면으로 확장하여 아비새에게 도전합니다.
“<em>너는 힘을 내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힘을 내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em>”(13절)
여기서 ‘힘을 내라’로 번역된 단어는 ‘강하라’, ‘굳세어라’는 명령의 뜻과 ‘우리가 함께 힘을 내자’라는 청유의 의미가 있습니다.
형제와 온 백성이 함께 굳세어질 것을 다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명령과 청유로 끝나지 않습니다.
요압은 곧바로 ‘<em>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em>’를 덧붙입니다.
이를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그분의 눈에 좋으신 대로 행하실 것이다’가 됩니다.
이는 최선을 다해 담대히 싸우되, 그 결과는 여호와의 선하신 뜻에 온전히 맡긴다는 고백입니다.
요압은 군 지휘관으로서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까지 자기의 의지로 통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암몬과 아람 연합군을 도망치게 하셨습니다.

진정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모든 일에 책임을 다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리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최선을 사용해 일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맡은 일을 다하고 결과를 주님께 맡길 때, 주님은 가장 선한 방법으로 일하십니다.]]></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ue, 06 Oct 2026 07:25:0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9/11 고통을 통과하는 힘 (시편 119:153-168)]]></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581]]></link>
			<description><![CDATA[<strong>시편 119:153-168</strong>은 말씀을 사모하는 자의 삶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 보이고, 판단 받고, 살리심을 얻는 삶임을 이야기합니다.

시인은 사회적, 관계적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합니다(153-154절).
이는 시인이 고난 속에서도 말씀과의 관계를 끊지 않았던 까닭입니다.
“<em>나의 고난을 보시고 나를 건지소서 내가 주의 율법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em>”(153절)
또한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변호사가 되어 주셔서 주의 구원의 약속이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간구합니다.
“<em>주께서 나를 변호하시고 나를 구하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리소서</em>”(154절)
이처럼 시인이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요청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가는 길이 악인이 가는 길과 구별되었기 때문입니다.

악인의 길은 주의 법을 지키지 않는 길이기에 구원과 거리가 멉니다.
그러나 시인이 걸어가고 있는 길은 말씀을 향한 마음의 방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em>나를 핍박하는 자들과 나의 대적들이 많으나 나는 주의 증거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em>”(157절).
말씀에 대한 시인의 태도는 고난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방향을 잃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순종 또한 평안할 때의 결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폭풍우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방향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시인은 자신이 구원받는 근거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라 고백합니다(159-160절).
“내가 주의 법도들을 사랑함을 보옵소서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리소서”(159절).
시인은 자신을 살리는 것은 주의 인자함을 깨달았기에 권력자들의 위협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직 주의 말씀만을 사모하며 경외하였습니다(161절).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의 위협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생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은 세상의 그 어떤 방해와 유혹 앞에서도 말씀을 붙잡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주의 말씀을 의지하여 주님을 찬양합니다(164-168절).
“<em>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em>”(164절)
‘하루 일곱 번씩’이란 온전함과 충만함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하루를 온전히 하나님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다는 고백입니다.
오늘도 나의 판단과 힘을 내려 놓고 주의 말씀을 의지해 한 걸음씩 순종하십시다.]]></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Fri, 11 Sep 2026 07:24:2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9/10 언제나 옳으신 하나님 (시편 119:137-152)]]></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580]]></link>
			<description><![CDATA[<strong>시편 119:137-152</strong>은 우리가 어떤 형편에서도 언제나 옳으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말씀을 붙들어야 함을 가르칩니다.

시인은 영원한 의와 생명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습니다(137-144절).
하나님의 성품은 의로우시고 판단은 옳다고 고백합니다(137절).
이는 하나님의 결정이 그분의 의로우신 성품에서 나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로우신 성품에서 나온 주의 말씀 또한 의롭고 성실하다고 고백합니다(138절).
그런데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질서가 무너진 상태입니다.
이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감정이 격해 졌음을 표현합니다.
“<em>내 대적들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으므로 내 열정이 나를 삼켰나이다</em>”(139절)
이런 현실 가운데서 시인은 순수한 말씀을 사랑하고 그 교훈을 잊지 아니하였다고 선언합니다(140-141절).
본문에서 ‘순수하다’는 뜻은 금속을 제련해 불순물을 제거하는 이미지를 담고 있기에 말씀은 고난 속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순전한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의는 지속적이고 변하지 않는 질서이고 주의 법은 진실하다고 강조합니다.
“<em>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로소이다</em>”(142절)
그런 까닭에 시인은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말씀의 기쁨을 누립니다.
“<em>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em>”(143절)
고난 속에서도 말씀의 기쁨을 누리는 시인은 다시 한번 주의 증거들은 언제나 의로운 까닭에 그것으로 자신을 깨우쳐서 몸의 활력을 얻게 해 달라 간구합니다(144절).
말씀의 깨달음은 곧 하나님의 뜻 안에서 생명을 회복하는 통로인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전심으로 부르짖어 구원을 요청합니다(145-146절).
우리 또한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을 수 있는 자이며, 하나님은 그 부르짖음에 응답하실 수 있는 분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주의 응답은 ‘주의 교훈을 지키는 삶’으로 이어짐을 기억하세요.
“<em>여호와여 내가 전심으로 부르짖었사오니 내게 응답하소서 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키리이다</em>”(145절)
주의 응답을 간절히 사모하는 시인은 날이 밝기 전부터 부르짖으며 말씀을 향한 간절함이 있기에 말씀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묵상합니다.
시인에게 하나님은 가까이 계시는 분인 까닭입니다(149-152절).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말씀대로 우리를 살리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세요.]]></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10 Sep 2026 07:47:1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9/9 말씀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 (시편 119:121-136)]]></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579]]></link>
			<description><![CDATA[<strong>시편 119:121-136</strong>은 정의와 공의가 무너진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자신을 인도해 달라 간구하는 이야기입니다.

시인은 억압자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 왔음을 고백하며 그들의 손에서 건져 달라고 간구합니다(121-123절).
“<em>내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사오니 나를 박해하는 자들에게 나를 넘기지 마옵소서</em>”(121절)
시인은 자신을 ‘주의 종’으로 부르며 하나님의 인자함으로 자신에게 행하실 뿐 아니라, 주의 법을 폐한 악인들에게 개입해 달라고 간구합니다(124-126절).
“<em>그들이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께서 일하실 때니이다</em>”(126절).
성도는 어두운 시대에 끝까지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려야 합니다.
고난 중에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보증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끝까지 구원을 사모하며 소망의 인내를 갖도록 힘을 주십니다.

시인은 악인들이 주의 말씀을 폐한 상황에서도 주의 계명을 사랑합니다.
“<em>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들을 금 곧 순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em>”(127절)
또한 시인은 주의 법도, 즉 말씀의 교훈을 바르게 여깁니다(128절).
그리고 주의 증거들이 놀라워서 시인은 말씀에 순종한다고 고백합니다(129절).
주의 말씀을 열면 우둔한 사람까지 깨닫게 하는 빛을 비추어 줍니다.
이것이 하나님 말씀의 능력이기에 시인은 말씀을 향한 갈망이 자신의 속에서 차고 넘친다 고백합니다(130-131절).
고난 가운데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야 할 것은 문제 해결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향한 지극한 사랑과 갈망함이 우리 영혼에 머물기를 바래야 합니다.

이제 시인은 자신의 발걸음이 주의 말씀에 굳게 세워지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132-133절).
시인은 주의 교훈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의 억압에서 구원해 달라 요청합니다(134절)
그리고 주의 율례(법)을 깨달아 알도록 자신을 굽어 살펴달라고 구합니다(135절).
그런데 자신을 위한 기도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말씀을 저버린 사람들을 위해 애통해 합니다(136절).
이것이 말씀을 사랑하고 갈망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귀하게 여기며, 말씀을 떠난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세요.]]></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Wed, 09 Sep 2026 20:18:2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9/4 말씀을 기억하는 자의 유익 (시편 119:49-64)]]></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575]]></link>
			<description><![CDATA[<strong>시편 119:49-64</strong>은 고난 속에서 말씀을 기억하고 붙드는 것이 삶을 다시 세우는 신앙 행위임을 이야기합니다.

시인은 주의 말씀을 기억해 달라고 간구합니다(49-52절).
“<em>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em>”(49절)
‘기억하소서’란 이미 주신 말씀이 현재의 고난 속에서 다시 효력이 있게 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주의 말씀은 고난 중에 소망의 근거가 되며 위로가 되는 까닭입니다(49-50, 52절).
그래서 시인은 어떤 경우에도 신앙의 기준을 하나님의 말씀에 둡니다.
“<em>교만한 자들이 나를 심히 조롱하였어도 나는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em>”(51절).
그리스도인에게 진정한 위로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을 때, 다시 일어설 힘을 얻습니다.

시인은 말씀을 버린 악인들에 대해 분개하면서도 “<em>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들이 나의 노래가 되었다</em>” 고백합니다(54절).
그리고 불안과 외로움이 깊어지는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합니다(55절).
주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붙든다는 뜻입니다.
또한 주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행함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자신의 소유라 고백합니다(56절).

이제 시인은 여호와를 분깃으로 삼고 결단으로 나아갑니다(57-64절)
“<em>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em>”(57절)
이는 자신의 소유와 안전을 오직 하나님께만 둔다는 고백입니다.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는 결단은 단순한 의무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자기의 기업으로 삼은 자의 응답입니다.
이러한 자의 간구는 ‘전심으로’입니다.
“<em>내가 전심으로 주께 간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em>”(58절)

우리의 간구가 ‘전심으로’가 되는 근거는 ‘주의 말씀대로’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막연한 것이 아니라 주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을 근거합니다.
약속의 말씀에 근거한 신앙을 소유할 때, 말씀에 즉각적 응답으로 나타납니다.
“<em>주의 계명들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하지 아니하였나이다</em>”(60절)

신앙의 정체성이 외부의 압박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 자는 인생의 밤중에도 감사의 입술을 닫지 않습니다(62절).
온 땅에 충만한 주의 인자하심, 곧 주의 변함없는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도 주를 찬송하며 주의 인자하심을 경험하며 승리하세요.]]></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Fri, 04 Sep 2026 20:52:5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9/3 살아나는 길 (시편 119:33-48)]]></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573]]></link>
			<description><![CDATA[<strong>시편 119:33-48</strong>은 말씀을 지키는 삶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나아갈 방향을 이야기합니다.

시인은 말씀 앞에서 간절히 간구합니다(33-35절).
첫째, 말씀이 제시하는 길을 가르쳐 달라고 간구합니다(33절).
이는 일평생 변함없이 말씀에 순종함으로 살기 위함입니다.
둘째, 말씀을 깨닫게 해 달라 간구합니다(34절).
이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전심으로 따르기 위함입니다.
셋째, 말씀이 가리키는 길을 걷게 해 달라 간구합니다(35절).
이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게 위함입니다.

시인은 신앙의 문제가 마음과 우리의 시선에 있음을 언급합니다(36-37절)
그래서 마음이 탐욕이 아닌 하나님의 증거들을 향하기를 소원합니다.
또한 자신의 눈이 허탄한 것을 향하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눈이 향하는 곳이 주님께 향할 때, 다시 살아납니다.
“<em>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em>”(37 하반절)

말씀으로 생명이 회복되면 주의 말씀은 우리의 삶에 기둥이 됩니다(38절).
말씀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실재적 근거인 까닭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을 단순히 인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말씀을 생명의 근원으로 갈망해야 함을 기억하세요(40절).
사람들이 흔히 따라가는 보이는 이익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약속의 말씀을 붙드는 그 길이 바로 영혼이 사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마음과 눈이 탐욕과 헛된 것에서 떠나 말씀을 향해야 죽어가던 우리 영혼이 다시 살아납니다.

시인은 주의 인자하심이 임할 때, 담대함으로 말씀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음을 알고 사모합니다(41-48절)
“<em>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구원을 내게 임하게 하소서</em>”(41절)
그래야 우리는 진리 가운데서 떳떳하고 담대하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42, 45-46절).
그런데 우리를 떳떳하고 담대하게 하는 것은 주의 가르치심과 인자하심 입니다.

시인은 주의 말씀을 사랑하기에 말씀을 즐거워하며, 예배자로 살겠다 결단합니다.
“<em>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스스로 즐거워하며 또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em>”(47-48절)
우리 또한 말씀을 배우고, 마음을 돌이키고, 자유롭게 걸으며 사랑으로 묵상하는 삶을 유지해야 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03 Sep 2026 07:26:5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9/2 하나님 말씀의 능력 1 (시편 119:17-32)]]></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572]]></link>
			<description><![CDATA[<strong>시편 119:17-32</strong>은 시인이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여 생명을 구하는 이야기입니다.

시인은 자신을 ‘주의 종’이라 고백합니다(17절).
이는 말씀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의지나 능력에 있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지키는 삶 자체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생명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생명’이란 단순한 생존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신앙의 힘을 의미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눈을 열어 달라고 간구합니다(18절).
이는 말씀 안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보기 위함입니다.
눈이 열려야 놀라운 말씀이 보입니다.
우리의 눈을 열어 놀라운 것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임하도록 간구하세요.

시인은 교만한 자에게 듣는 비방과 멸시를 자신에게서 떠나게 해 달라 간구합니다.
여기서 ‘교만’은 하나님의 가르침 밖에서 자기 길을 세우려는 신앙적 이탈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오만한 자를 말합니다(21-23절)
그러나 시인은 오만한 자의 비방과 멸시 가운데서도 주님의 증거가 즐거움이요 주님의 교훈이 자신의 충고자, 즉 스승이 됩니다(24절).
오늘 우리 또한 대적의 오만한 태도 앞에서 그들처럼 또다른 음모를 꾸미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묵상하고 즐거워합니다.
이것이 모든 사탄의 미혹을 이기는 진정한 비결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영혼이 ‘진토’에 붙었다’고 탄식합니다.
‘진토’는 낮아짐과 죽음의 경계,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상태를 암시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절망적 상태를 설명하는데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의 말씀으로 살아나게” 해 달라 간구합니다.
“<em>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em>”(25절)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의 말씀’이요, ‘영원한 생명의 말씀’입니다.
말씀은 무너진 생명을 다시 일으키는 하나님의 약속임을 잊지 마십시오.
또한 시인은 말씀으로 자신을 ‘세우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나의 영혼이 눌림으로 말미암아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28절)
이는 자신을 다시 소생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오늘 우리 영혼이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다시 살게 하는 통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시 일어나게 하는 말씀을 향하여 달려가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Wed, 02 Sep 2026 07:18:2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9/1 복 있는 자의 길 (시편 119:1-16)]]></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571]]></link>
			<description><![CDATA[<strong>시편 119:1-16</strong>은 말씀에 대한 순종과 즐거움이 신앙의 출발점임을 가르쳐 줍니다.

시인은 말씀의 길을 걷는 자가 복되다 선포합니다(1-3절).
“<em>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em>”(1절).
‘온전하다’는 말은 삶의 방향이 하나님께 바르게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즉, 행위가 온전한 자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곁길로 새지 않고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복있는 자의 태도는 적극적으로 ‘주의 도’를 행하는 것입니다(3절).

시인은 복 있는 자는 말씀을 지키고자 하는 결단의 기도가 있다고 말합니다(4-8절).
“<em>주께서 명령하사 주의 법도를 잘 지키게 하셨나이다</em>”(4절)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조언이나 권면이 아닙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명령’으로 받아들입니다.

시인은 인간의 연약함으로 말씀의 길에서 쉽게 흔들린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내 길을 굳게 정하사”(5절) 라며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삶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까닭입니다(6절).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든 판단과 행위가 말씀의 빛 아래 놓일 때,
비로소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깨닫게 하는 통로입니다.
이 깨달음으로 우리는 정직하게 드리는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em>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em>”(7절).
그러나 말씀의 도를 행하는 자들도 자기 힘만으로
그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없음을 알기에 하나님의 붙들어 주심을 구합니다(8절).
우리의 행실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주의 말씀만 지키는 길이요(9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않는 길이요(10절), 주의 말씀을 내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는 길입니다(11절).
‘마음에 두었다’는 표현은 ‘보물처럼 저장하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단지 듣고 읽는 것을 넘어, 영혼 깊은 곳에 보물처럼 저장해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으로 사탄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말씀을 따라 승리하는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복된 길을 걸어가는 자의 입술에는 즐거운 노래가 있습니다(12-16절).
그래서 시인은 주님의 율례들을 가르쳐 달라고 간구합니다.
항상 말씀을 떠나지 않기 위해 가르침을 받기를 사모하고 행하는 자의 입술에는 즐거운 찬양이 있음을 기억하고 순종과 기도로 승리하세요.]]></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ue, 01 Sep 2026 07:47:4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8/31 여호와삼마의 은혜 (에스겔 48:23-35)]]></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570]]></link>
			<description><![CDATA[<strong>에스겔 48:23-35</strong>은 남쪽의 다섯 지파의 영토 지정하고 성읍의 출입구를 지정하며 그 성읍의 새 이름을 선포합니다.

이스라엘 중앙의 ‘거룩한 구역’ 바로 남쪽 경계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다섯 지파, 즉 베냐민, 시므온, 잇사갈, 스블론, 갓의 기업을 확정합니다(23-27절).
이러한 땅의 분배는 인간적 계산이나 지정학적 위치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비롭고 주권적인 기준에 따라 모든 지파가 평등하게 분배받도록 측량해 주십니다.

‘거룩한 구역’을 중심으로 북쪽 일곱 지파의 땅 분배와 남쪽 다섯 지파의 땅 분배는 제비 뽑아 나누어 주었다고 말합니다(29절).
구약성경에서 ‘제비 뽑기’ 방식은 인간의 계산이나 권력의 개입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적 결정을 받아들이는 믿음의 행위였습니다.
“<em>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em>”(잠 16:33)
비롯 에스겔의 환상 안에서 각 지파들의 위치가 이미 정해졌지만 이 땅이 제비 뽑아 각 지파에게 주어졌다는 언급은
이 땅(기업)이 철저히 값없이 주어진 ‘은혜의 선물’임을 깨닫게 해 줍니다.

이제 성전 남쪽에 세워질 중앙 ‘성읍’을 측량합니다(30-34절).
이 성읍은 사방이 각각 4,500척(2.4 km)인 정사각형입니다.
이 성읍의 사방 성벽에는 각각 세 개씩, 총 열두 개의 출입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열두 개 모든 문에는 각각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열두 지파의 문이 사방으로 있는 것의 의미는 어느 방향에서든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에게 항상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향해서도 ‘사방으로 열린 문’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연약함으로 넘어지고 깨어져 부끄러움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고 머뭇거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긍휼한 마음으로 누구든지 당신께 나아 오기를 기다리십니다.
“<em>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em>”(히 4:16)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 용서의 은혜를 누리는 성도가 되십시다.

에스겔은 성읍의 이름을 ‘<em>여호와삼마</em>’라 선포합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거기 계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당신의 자녀들과 함께하심을 기억하십시다.]]></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Mon, 31 Aug 2026 16:43:3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8/29 신실함을 지키라 (에스겔 48:1-14)]]></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569]]></link>
			<description><![CDATA[<strong>에스겔 48:1-14</strong>은 이스라엘 영토 북쪽 끝에서부터 정중앙의 성전이 위치한 ‘거룩한 땅’에 대한 구역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북쪽 경계선에서부터 남쪽으로 내려오며 7개 지파(단, 아셀, 납달리, 므낫세, 에브라임, 르우벤, 유다지파)에게 차례로 땅을 분배하십니다(1-7절).
땅을 분배하면서 여호수아 시대의 분배와 특이점이 있습니다.
여호수아 시대에는 각 지파의 인구수와 각 지형의 특성을 고려하여 땅을 분배하였습니다.
반면 본문에서는 ‘동쪽에서 서쪽까지는’이라는 공식을 매 지파마다 반복하여 사용함으로, 각 지파가 한 치의 차별도 없이 길이와 폭이 평등하게 분배 받아 기업을 얻게 됨을 강조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분배의 원칙이 드러난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지파는 단순히 혈연관계가 아닙니다.
예배와 교육과 삶을 함께 나누는 하나님 안에서 가족 공동체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된 공동체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세상에 드러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그리스도로 회복된 믿음 공동체를 이루며 세상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며 사랑의 수고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북쪽 7 지파의 기업을 배정한 이후에 거룩한 구역을 지정하십니다(8-12절)
거룩한 구역의 중심에는 성전이 있고 주변에는 사독 계열 제사장들을 위한 땅이 분배됩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 앞에서 범죄할 때, 다른 계열의 제사장들은 동조했습니다.
그러나 사독 계열의 제사장들은 잘못된 길에 들어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독 계열의 제사장들에게 당신께 가까이 나아와 섬기며 하나님 앞에 서서 제사를 주관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다른 계열의 레위인들은 제사장으로서 제단을 담당하는 직무를 거두십니다.
대신 성전 문을 지키며 백성 앞에 서서 섬기는 역할을 부여하셨습니다(겔 44:10-15).

우리에게도 하나님 앞에서 신실함이 필요합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을 때, 하나님이 보내신 자리를 계속 감당하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독 계열의 제사장들의 신실함을 기억하셨듯이 우리의 신실한 걸음도 기억하심을 잊지 마세요.
하나님께 속한 우리의 삶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Sun, 30 Aug 2026 21:26:1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8/28 공평과 사랑으로 (에스겔 47:13-23)]]></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568]]></link>
			<description><![CDATA[<strong>에스겔 47:13-23</strong>은 포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이 거주할 약속의 땅 경계와 분배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땅 분배의 대원칙을 말씀하십니다(13-14절).
“<em>내가 옛적에 내 손을 들어 맹세하여 이 땅을 너희 조상들에게 주겠다고 하였나니 너희는 공평하게 나누어 기업을 삼으라 이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되리라</em>”(14절)
땅을 분배 받는 대상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입니다(13절).
북이스라엘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하나님은 12지파로 이루어진 통일된 이스라엘을 염두해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땅 분배의 대 원칙은 첫째,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범죄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옛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말씀으로 신실하게 이루어 가십니다.
땅 분배의 대 원칙 두 번째는 ‘공평’입니다.
여호수아 시대에 가나안 땅 분배는 각 지파의 인구수나 정치, 군사력에 비례해 이루어 졌습니다(수 13-20장).
그러나 새로운 시대의 땅 분배는 인간의 공로나 세력은 배제됩니다.
모든 지파는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공평하게 기업을 상속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대로도 이루어 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이 지연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반드시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회복된 나라의 사방 경계선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15-20절).
하나님은 우리 삶의 자리에 분명한 경계선을 세우시는 분입니다.
삶의 상처와 실패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흩어진 이스라엘의 삶의 경계를 다시 세우셨듯이 우리의 무너진 자리도 분명히 세우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늘 붙드세요.

하나님은 땅 분배에 있어서 이스라엘 가운데 거주하며 자녀를 낳은 타국인도 이스라엘과 똑같이 기업을 받도록 명령하십니다(21-23절).
하나님은 이방인에게도 동등한 기업을 주심으로 하나님 나라는 차별이 없고 공의로 다스리는 나라임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공평과 사랑으로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든든히 세우는 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속한 믿음의 공동체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워 나가세요.]]></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Fri, 28 Aug 2026 07:40:0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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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CDATA[2026/8/27 하나님의 생명수가 흐르게 하라 (에스겔 47:1-12)]]></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567]]></link>
			<description><![CDATA[<strong>에스겔 47:1-12</strong>은 ‘강물 환상’을 통해 이스라엘이 어떻게 회복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안내자는 에스겔을 성전 문으로 안내합니다.
성전 정면은 동쪽을 향하고 있고,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제단의 남쪽으로 흘러 갔습니다(1절).
성전의 안뜰 동문과 바깥 동문은 여호와의 영광이 들어온 후 영구히 닫혀 있어야 하기 때문에(겔 44:1-2)
북쪽 외곽문을 지나 동쪽으로 난 문에 도착했는데 동문의 오른쪽 틈새에서 생명수가 스며 나오는 것을 에스겔이 보았습니다(2절).
이 생명수는 하나님이 임재가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흘러나온 것입니다.
이 모습은 요한계시록 22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보좌에서 생명수가 흘러나오는 장면과 동일합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생명의 근원이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참된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기에 다른 곳에서 찾으면 안 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생명의 근원이심을 인정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선한 능력으로 살아가야 함을 잊지 마세요.

안내자는 에스겔을 강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생명이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함을 가르쳐 줍니다(3-5절).
안내자는 손에 측량줄을 잡고 강물을 따라 동쪽으로 나아가며 1,000척(333미터)씩 4번 측량해 갈수록
물의 깊이가 더 깊어져 헤엄칠 만한 물이 되어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습니다.
물의 깊이가 단계적으로(발목, 무릅, 허리, 능히 건너지 못함) 깊어짐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생명이 점점 더 깊고 풍성해진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안에 머물수록 그 생명은 깊어지고,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채운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 보좌로부터 나와 흘러가는 것의 놀라운 변화를 봅니다(6-12절).
강물이 흘러 죽은 바다로 들어가니, 그 죽은 바다가 살아납니다.
물고기 떼가 가득해지고, 어부들이 강가에서 그물을 펼칩니다.
강물이 흘러가는 양쪽에는 온갖 과실나무가 자라서 열매가 풍성하게 맺습니다.
과실나무들은 잎이 시들지 않고 열매가 끊이지 않으며, 심지어 매달 새 열매를 맺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이 죽은 것을 살립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이 내 삶에서 죽어 있는 영역까지 흘러가도록 그분 앞에 모든 것을 열어 놓아 풍성한 생명을 경험하는 것을 잊지 마세요.]]></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hu, 27 Aug 2026 07:37:2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8/26 모든 것의 참 주인 (에스겔 46:16-24)]]></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566]]></link>
			<description><![CDATA[<strong>에스겔 46:16-24</strong>은 왕의 토지 상속과 성전 부엌의 규칙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왕이 토지를 어떻게 상속할 수 있는지를 말씀하십니다(16-18절).
왕은 자신의 토지 일부를 아들에게 물려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종에게 선물로 준 토지는 종이 자유를 얻게 되는 ‘희년’까지만 종의 소유가 되는 임시 소유물입니다.
‘희년’이 되면 반드시 원래 소유자인 왕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또한 왕은 백성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에서 토지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소유이며 이러한 원칙은 ‘희년’ 정신에 의해 지켜져 왔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영원히 내 것으로 소유할 수 없으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희년’에 땅이 본래 주인에게 돌아갔듯이 우리가 가진 모든 것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왕이 권력으로 함부로 백성들의 토지를 빼앗지 못하게 한 것은 탐욕이 하나님의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치명적인 죄임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자리에도 탐심을 자극하는 유혹의 요소들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시기하는 마음에 기뻐하지 못하고 내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 마음이 우리 안에 있는 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예배는 흔들립니다.
성경은 탐욕이 우상숭배라 경고했습니다(골로새서 3:5).
탐욕의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성도가 되기를 힘쓰세요.

하나님은 성전의 제사장 전용 부엌과 백성 전용 바깥뜰의 부엌을 구분하십니다(19-24절).
안내자는 에스겔을 제사장들의 거룩한 방 뒤편, 서쪽 끝에 자리 잡은 ‘거룩한 부엌’으로 이끌어 들어갑니다.
이 부엌의 주된 용도는 제사장들이 지극히 거룩한 제물, 곧 속건제, 속죄제, 소제물을 삶거나 굽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부엌’을 안뜰 깊숙히 자리 잡은 이유를 설명합니다(20절).
거룩한 제물에 일반 백성이 접촉하게 될 경우 백성이 피해를 입게 되는 까닭입니다.
백성 전용 바깥뜰 부엌에서 삶은 고기는 화목제물로서 백성들에게 나누어 줌으로 공동체가 기쁨으로 식탁 교제를 위해 사용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구별된 거룩한 예배와 동시에 백성의 친교를 여기신 것입니다.

참된 예배는 모든 것의 참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행동하는 것입니다.]]></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Wed, 26 Aug 2026 07:19:1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8/25 예배에 대한 바른 이해 (에스겔 46:1-15)]]></title>
			<link><![CDATA[https://gkccorona.com/?kboard_content_redirect=1565]]></link>
			<description><![CDATA[<strong>에스겔 46:1-15</strong>은 매주 안식일, 매월 초하루 그리고 매일 아침에 드리는 정기 예배를 어떻게 구별하여 드리는 지를 상세히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은 매주 찾아오는 ‘안식일’과 매월 찾아오는 초하루애 관한 규례를 말씀하십니다(1-3절).
‘안 뜰 동쪽을 향한 문은 평소에는 닫혀 있다가 안식일과 매달 초하루에만 열어 놓습니다.
“<em>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안뜰 동쪽을 향한 문은 일하는 엿새 동안에는 닫되 안식일에는 열며 초하루에도 열고</em>”(1절)
동쪽을 향한 문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으로 임하신 곳입니다.
하나님은 왕과 일반 백성의 예배드리는 동선과 위치를 알려 주십니다.
왕은 바깥 문 통로를 통해 들어와 문기둥 곁에서, 제사장은 성전 안뜰 제단에서, 일반 백성은 성전 바깥뜰에서 예배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질서 있는 예배를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질서 있는 형식을 통해 예배자는 오직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을 기억하고 감사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오늘도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해 예배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왕이 안식일과 초하루에 하나님께 바쳐야 할 제물의 종류와 양을 규정합니다(4-8절).
이는 왕으로서 누리는 특권뿐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를 후원해야 할 책임을 무겁게 가지라는 뜻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일반 백성들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 성전에 찾아올 때 백성의 동선을 통제하기 위한 규칙을 알려 주십니다(9절).
그리고 절기 때, 성전을 찾아 온 많은 백성 사이에서 왕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10절).
제사의 처음부터 끝나기까지 세밀하게 정해 주신 규칙은 하나님이 예배의 질서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시는지를 알려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배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순서에 의해 진행되는 예배만이 전부가 아니라 예배는 집에서 예배 드리기 위해 준비하는 것부터 예배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축도 이후에 친교, 일상으로 돌아가 사는 삶 자체 또한 예배의 요소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예배 임을 기억하고 하나님 중심의 삶이 되어야 온전한 예배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13-15절).]]></description>
			<author><![CDATA[admin]]></author>
			<pubDate>Tue, 25 Aug 2026 20:45:18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gkccorona.com/?kboard_redirect=2"><![CDATA[새벽 단상]]></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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