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단상

2023/5/5 올바른 분별력은 거짓에 속하지 않는 능력입니다.

Author
admin
Date
2023-05-05 07:41
Views
329
삼하 14:12-24 요압의 계책대로 다윗이 압살롬을 3년간 지낸 타국에서 데려오지만 가택연금을 명령하는 이야기입니다. 

드고아의 여인은 다윗 앞에서 연기를 했지만 다윗은 진심으로 그 여인을 위해 판결했습니다.
이제 여인은 자신의 이야기에 담긴 의도를 다윗에게 드러냅니다(12-17절).
다윗은 이 모든 것이 요압이 꾸며낸 일이라는 사실을 눈치챕니다.
여인에게 속았다는 사실과 요압이 정치적으로 압살롬을 이용하려는 것을 다윗이 알면서도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다만 압살롬을 데려오도록 허락하며 대신 자신을 볼 수 없게 하라고 명령합니다(19-24절). 


압살롬의 처지와 관련해 요압이 다윗의 마음을 돌리려고 세운 계책은 밧세바 사건 때 나단이 다윗에게 비유를 들어서 스스로 잘못을 깨닫도록 이끌었듯이
요압 자신도 드고아 여인을 통해 압살롬을 돌아오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결국 요압의 의도대로 압살롬을 데려오게 합니다.
그러나 한동안 다윗을 보지 못하고 가택에 연금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요압의 계책과 나단의 신탁의 근본적인 차이를 주목해야 합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전한 이야기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예언자의 역활에 충실한 것이기에 개인의 생각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역사가 있는 까닭에 다윗의 즉각적인 회개를 이끌어냈습니다.


반면 드고아 여인이 다윗에게 전한 이야기는 합당해 보이지만 여인의 이야기 뒤에는 전적으로 요압의 의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인양 가장한 자의적 해석이 가득차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다윗의 진심 어린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현장에서 난무하는 많은 말이 하나님의 뜻, 마음인양 기대며 말하지만 많은 경우 요압처럼 개인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에서 출발합니다.
물론 요압도 압살롬을 불쌍히 여기는 선한 마음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출발이 아무리 선하도라도 자의적 해석이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끝까지 사용받는 성도는 마음과 지성에 하나님의 말씀을 채움으로 성령님이 주시는 거짓에 속하지 않는 올바른 분별력을 가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