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단상

2023/8/25 십자가의 예수님을 붙들라 (행 26: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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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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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5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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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6:24-32은 바울의 증언에 대한 왕과 총독 등의 반응을 이야기합니다.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24절)란 말은 바울이 아직 변론하고 있는 중이란 의미입니다.
바울과 유대인인 아그립바왕 사이에 유대인들의 선이해를 바탕으로 한 대화가 오고가고 있는데 갑자기 총독 베스도가 끼어든 것입니다. 
로마인인 베스도가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중 예수가 부활했다는 것은 미친 소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확신 가운데 복음을 전했지만 베스도에게 바울은 미친 소리를 하는 사람으로 보인 것입니다.
바울은 베스도의 비난에 대해 자신은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한다고 반박합니다(25절).
“온전한”으로 번역된 단어는 '사려 깊은'의 뜻을 가집니다.
즉, 바울은 맑은 정신으로 참말을 하고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믿는 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수용한다는 의미입니다.
복음은 세상의 가치, 논리를 거스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은 언제 어디서든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이제 아그립바왕에게 “이 일을 아시기로”라 말합니다(26절).
즉,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사건 등을 안다는 것입니다.
알 수 있는 이유는 '한 쪽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 아닌 까닭입니다.
공적으로 일어난 사건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아그립바왕의 냉소적인 반응(28절)에 왕을 포함한 모든 청중들에게 자신이 결박된 것 외에는 자신처럼 되기를 원한다고 선포합니다(29절).
바울은 아그립바왕뿐 아니라 모두를 믿음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바울에 대한 모든 심문이 끝난 후 무죄에 해당하는 결론을 내립니다(31절).
그러면서 아그립바왕은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고 첨언을 합니다(32절).

유대와 로마의 사회법에 밝았던 그들에게는바울의 잘못된 판단으로 석방의 기회를 잃은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들고 로마로 가는 것은 비록 죄인의 신분으로 가는 길이지만 “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행 23:11).

바울에게 그러하듯이 우리 모두에게도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입니다(고전 1:18-25).
구원의 능력이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지혜인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