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단상

2022/03/09 예수님의 권위 아래서 살라

Author
admin
Date
2022-07-11 13:08
Views
403
눅 20:1-8은 복음의 핵심적인 문제로 접근합니다. 예수님이 성전 뜰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나누실 때 제사장들과 율법 교사들은 예수님께 두 가지 질문을 합니다.
무슨 권위로 당신은 이런 일들을 행하시는가? 그리고 누가 그런 권세를 주었는가? 입니다.
수세기 동안 성전운영을 책임져온 제사장들에게 성전에서의 예수님의 행동은
자신들의 리더십을 방해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예수은 질문을 통해서 대답하십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세례 요한의 사역을 확인하는 질문을 하십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매우 탁월한 질문으로 요한의 근원이 예수님의 근원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질문에 답변을 할 수 없었습니다. 요한의 사역이 하늘에 근원을 두고 있는 것이라고 인정하게 된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하늘의 선포에 응답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요한의 사역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라고 대답하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세례요한을 선지자라고 생각하고 따랐기 때문에 사람들의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른다고 주장하면서
안전한 루트를 선택하기로 결정합니다. 예수님도 구체적인 대답을 하지 않고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 지 너희에게 이르지 않겠다”(눅 20:8)고 말하십니다.
논쟁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대제사장들과 유대 장로들은 인정하기를 주저하고 싫어했지만 예수님은 많은 사역을 통해서 주의 권세가 어디에서 주어진 것인지에 관해
매우 풍부한 증거들을 이미 제공해 주셨기 때문입니다(눅 5:24-11:20)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을 우리 삶, 우리 생각과 행동의 주권자로 인정하고
큰 소리가 아닌 작은 속삭임으로 우리에게 다가 오시더라도 그 권위 아래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온 세상의 주인이나 주님이시라면 예수님의 주권을 알릴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예수에 대해 오랜 기간을 두고 공유했을 때,
무언가에 대답하는 것이 더 이상 적절하지 않은 그런 시점이 올 것입니다.
대신에 우리는그 사람에게 여태껏 이미 드러나고 알게 된 것에 대해
깊이 묵상하도록 요구하고 촉구해야만 하는 그런 시간이 올 것입니다.
어떤 상황들에서는, 반복되는 의문과 질문들에 대해 적절하게 반응하는 유일한 길이
말이 아니라 그저 계속적으로 사랑해주는 것인 그런 경우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곳들에서도 우리를 향해 우리가 “예스”라고 해야 할 때엔 “예스”라 고해야만 하며,
우리의 “노”는 “노”가되어야만 한다고 촉구하십니다. 다른 그 어떤 행동도 성실함과 신뢰를 무너뜨립니다.

“너희는 ‘예’ 할 때에는 ‘예’라고 말만하고, ‘아니오’할 때에는 ‘아니오’라는 말만 하여라.
이보다 지나치는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 5:37)